[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해운대'는 '강남'의 길을 갈 것인가

부산 동-서 불균형 격차 너무 커졌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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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의 화려한 야경. 부산일보 DB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의 화려한 야경. 부산일보 DB

서울 강남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강남불패'의 신화는 부동산 시장의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 노영민 청와대비서실장도 강남 집을 남기고, 청주 아파트를 내놓으려다가 온갖 욕을 들어야 했다. 정부의 각종 부동산 정책에도 강남 집값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부산 해운대를 강남과 비교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정부의 '7·10'부동산 대책 이후 해운대 집값이 더 뛰고 거래량 상승까지 일어나자 해운대가 강남화 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강남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해진다. 해운대가 지금처럼 강남이 갔던 길을 따라가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도 알아야겠다.


■강남, 비싼 이유가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1974∼1978년 강남 개발 현장을 찍은 사진. 연합뉴스 서울역사박물관이 1974∼1978년 강남 개발 현장을 찍은 사진. 연합뉴스

1950~60년대만 해도 강남은 강북에 채소와 과일을 공급하던 농업지대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와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를 건설하고 나서 강남 개발이 시작되었다. 강남이 서울로 편입된 직후만 해도 서울시민들이 이주를 꺼릴 정도로 시골이었다. 유하 감독이 만든 영화 '강남 1970'에는 1970년대 초 강남을 배경으로 부동산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영화 속에는 여당 돈줄인 재정위원장 박승구가 "서울이 옮겨간다는 데 땅값이라고 가만있겠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강남의 땅값은 자고 나면 올라 1년 새 무려 10배 이상 뛰어오르기도 했다. '복부인'이라는 신조어가 이때 처음 등장했다.


유하 감독이 만든 영화 '강남 1970'의 한 장면. 유하 감독이 만든 영화 '강남 1970'의 한 장면.


강남은 우리나라 최초이자, 가장 성공한 신도시 개발이 되었다. 체계적인 도시 및 도로계획으로 도로망은 바둑판식으로 잘 정비되었다. 지하철 노선도 강남에 가장 많다. 2호선, 3호선, 7호선, 9호선, 분당선이 촘촘하게 강남 전역을 뒤덮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강남 개발의 성공을 위해 강북에 있던 경기고 같은 명문 고등학교들을 강남으로 대거 이전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교통이 좋고 명문고가 많으니 학원도 덩달아 강남으로 몰렸다. 덕분에 강남 '대치동'은 입시학원의 대명사로 불린다.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부산일보 DB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부산일보 DB


여느 지방 도시와 강남이 차원이 다른 부분은 기업체 본사가 많다는 점이다. 명동 등지의 땅값이 너무 오르자 대기업 본사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대부분 강남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남의 가치는 덩달아 급상승했다. 외환위기 때 재벌그룹이 쓰러진 자리는 IT 벤처기업들이 메웠다. 이들은 지금도 테헤란로 주변에 모여서 '테헤란 밸리'를 형성하고 동반 성장하고 있다. 강남의 인프라는 경제·교통·교육·문화 등 전 방면에 걸쳐 국내 모든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고 하겠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강남의 '압도적인 집값' 역시 거품이 아니라 교통이나 교육 인프라 등 튼실한 물질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라고 평가한다.


■해운대, 반쪽짜리 성공


지금의 센텀시티 자리인 1952년 수영비행장의 모습. 부산일보 DB 지금의 센텀시티 자리인 1952년 수영비행장의 모습. 부산일보 DB

1980년대 부산의 인구는 급팽창했다. 해운대구는 1980년 동래구의 동쪽 지역을 분리하며 신설됐다. 부산시는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자 해운대 좌동에 부산 최초의 신도시를 만들기로 했다. 이 신도시는 1991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1996년에 첫 아파트가 입주했다. 해운대신도시가 조성되자 해운대로 인구가 대거 유입되었다. 1994년 해운대가 관광특구로 지정되며 해운대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 도시철도 2호선이 완공되고, 각종 편의시설이 잇따르며 해운대신도시는 부산을 대표하는 신흥 주거지로 주목받게 된다. 좌동에서 시작된 해운대의 명성은 2000년대 중반부터는 우동으로 확대된다. 센텀시티와 마린시티가 가세했기 때문이다. 센텀시티 부지는 수영비행장 자리였다. 수영비행장이 김해공항으로 기능을 이전한 후, 한동안 컨테이너 야적장으로 이용되었다. 그 흔적이 현재 센텀시티 마지막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며 개발을 위해 대기 중인 옛 한진 CY부지다. 센텀시티는 광안대교, 부산울산고속도로, 도시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되어 도로교통도 매우 좋은 편이다. '센텀(Centum)'은 라틴어로 숫자 100, 100% 완벽한 첨단 미래도시를 의미한다. 센텀시티에 속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센텀'이란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아 브랜드 가치는 상당해 보인다. 하지만 센텀시티는 대체로 '절반의 실패,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센텀시티는 2007년 센텀산업단지로 준공되어 현재 3500여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하지만 지식기반 산업체 위주의 좋은 일자리 확대라는 원래 취지는 한계에 부닥치고, 단순히 고급 주거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2020년 현재 센텀시티의 모습. 부산일보 DB 2020년 현재 센텀시티의 모습. 부산일보 DB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마린시티에는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 마린시티는 상업지역이지만 대부분 주상복합아파트나 주거형 오피스텔뿐이다. 마린시티는 서울올림픽 요트 경기를 개최하기 위하여 1980년대 후반에 수영만 요트경기장과 함께 바다를 메워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대우 매립지', 나중에는 '수영만 매립지'로 불렸다. 대우그룹이 잘나가던 시절에는 여기다 100층이 넘는 마천루를 지으려고 했다. 만약 그랬다면 주상복합아파트만 들어선 지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영화 '해운대'에는 아파트가 물에 잠기고 해일에 의해 무너지는 장면이 나온다. 해운대 아파트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진다며 영화 촬영 금지와 상영 금지를 요구해 아파트 브랜드 로고를 지우고, 아파트 모양도 아예 바꾸었다고 한다. 부산시교육청은 당초 센텀고 신설 대신 구도심지 학교를 이전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부산고는 이전을 신청했지만 지역주민 등의 반대로 무산되고 센텀고가 신설되었다. 자사고·특목고 지정 취소 시 센텀고가 더 명문고가 될 것으로 기대되며 이 지역 아파트값 상승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더 커진 동-서 불균형 놔둘 텐가

2003년 <부산일보>는 '부산 동-서 불균형 바로잡자'는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2회째 '경제력 격차' 기사에 ’부산의 동·서 불균형은 경제 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져 부동산 가격이 크게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하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신축 아파트 분양가는 해운대 일대가 평당 750만 원대인데 사상구나 사하구는 최고 평당 550만 원대였다. 2015년 평당 평균 2750만 원에 분양된 해운대 엘시티는 현재 평당 4000만 원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 17일 해운대구의 주택 매매가는 전주 대비 0.61% 상승해 부산 평균 상승률(0.17%)보다 3.5배나 높았다. 해운대구와 대조적으로 부산 16개 구·군 중 절반인 8곳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매가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솔렉스마케팅 김혜신 부산지사장은 "강남은 집값이 오르면 ‘지금이 아니면 강남에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심리가 작용해 매수세가 따라 올라가는데 해운대도 이와 비슷한 현상으로 보인다"라고 말한다. 해운대가 강남의 길을 가려면 기업의 유치가 필수다. 제2센텀지구를 만들어 창업기업들을 불러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만덕~센텀을 잇는 대심도가 2024년 완공될 예정이다. 사상~해운대 지하고속도로 건설도 본궤도에 올랐다. 해운대에는 호재가 많다. 부산의 모든 길이 해운대를 향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결론적으로 부산의 동-서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었다. 해운대에 살지 않는 시민들의 소외감이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 국가균형발전도 중요하지만 부산시 정책이 도시 내 불균형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이유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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