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아픔은 한몸, 좌절하지 마세요” 사진작가 박진영 ‘엄마의 방’ 개인전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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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머물며 작업 중인 부산 작가…카린서 10월 23일까지 전시
‘삶이란 무엇인가’ 근원적 질문에 대한 성찰, 사진으로 녹여내
알츠하이머 어머니 기억 모티브, 삶 응원하는 철학적 메시지 전해

박진영 사진작가의 ‘꿈에 본 연못-01’. 카린 제공 박진영 사진작가의 ‘꿈에 본 연못-01’. 카린 제공

사진작가 박진영을 상징하는 단어는 ‘응시’와 ‘중량감’일 것이다. 그가 작업 동반자로 선택한 카메라는 아날로그 시대를 대표한 대형 필름 카메라인 독일제 린호프 테크니카 기종이다. 카메라와 트라이포드, 필름 등 작업 도구 자체의 무게만 20킬로그램을 웃돈다. 그는 이 무거운 장비를 이고지고 노마드마냥 지구촌을 누비며 사람과 세상의 행간을 응시한다.

현재 일본 도쿄에 머물며 작업 중인 박진영이 최근의 작품 세계를 공개하는 자리를 부산에 마련했다.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자리한 카린(CARIN) 갤러리에서 ‘엄마의 방’이라는 개인전을 다음 달 23일까지 개최한다. 갤러리 3개 층을 모두 채웠다.

이번 전시회를 관통하는 그의 사유는 물리학의 양자론에 닿아 있었다. 그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원적인 명제에 접근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곳에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저곳에도 존재하는, 아래로 흐르지만 위로도 흘러가는, 광대하지만 작은 점으로 수렴할 수 있는 물성을 가진 양자(Quantum)의 세계처럼 인간의 삶도 획일적인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진영 사진작가의 ‘클래식#05’. 카린 제공 박진영 사진작가의 ‘클래식#05’. 카린 제공

“누구나 행복한 삶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인간 삶의 여정은 기쁨과 설렘이 있는 반면 아픔과 실망, 좌절이 반드시 함께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쪽 방향 즉, 밝은 쪽만 염원하는 관성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내 지치고, 좌절하고 우울에 빠져 자책합니다. 우리가 고비 또는 아픔, 후회, 상실이라고 부르는 감정이나 기억도 인생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결국에는 행복과 아픔이 한몸이고, 이렇게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는 것, 쉽게 좌절하면 안 된다는 것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개인전의 모티브는 작가의 어머니에게서 잉태됐다. 그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어머니의 기억을 추적하고,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체험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의미를 사진에 녹였다.

박진영 사진작가의 ‘가지 못한 섬’. 카린 제공 박진영 사진작가의 ‘가지 못한 섬’. 카린 제공

작가는 어머니의 추억이 녹아 있는 부산과 제주 등은 물론 어머니가 건강했을 당시 가보고 싶어했던 국내외의 장소와 자신이 어머니에게 반드시 보여주고 싶었던 곳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언뜻 서정적으로 비춰지지만 비구상적인 요소가 무척 강하다는 평가다. 응시와 사유를 통해 어머니와 인간의 삶을 뜨겁게 용해하려는 작가의 간절함이 각 장소의 우연성에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몽환적인 느낌을 담은 ‘꿈에 본 연못’ 시리즈 등 대형 파노라마 전시작들은 대형 아날로그 카메라 특유의 중량감 있는 감성과 강한 울림을 전한다. 더욱이 그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사실주의적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출발한 자신의 작품 여정이 메타포를 넘어 ‘부분으로 전체를 응축하고 비우고 지우는’ 새로운 세계에 뿌리 내렸음을 선언하는 듯하다.

그는 이번 개인전에 앞서 개최한 ‘엄마의 창’ 전시에 선보였던 작품, 그리고 그간의 대표작들도 함께 선보인다. 어머니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는 코너도 만들었다. 곳곳에 앤틱 가구들을 배치하는 등 관람객들이 이 공간에 편하게 머무르며 사색하도록 하는 다양한 시도도 병행했다.

“작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이미지는 ‘겹침’이었습니다. 사랑도 인생도 켜켜이 겹쳐지고 응축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좋고, 아쉬운 기억들이 결국 하나로 합쳐져 굳이 드러내 표현하지 않더라도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72년 부산 출생인 박진영은 사직중과 내성고를 거쳐 사진영상을 전공한 뒤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휴스턴뮤지엄, 산타바바라뮤지엄, 레인반하우스사진박물관, 아틀리에 에르메스, 고은사진미술관 등에서 130여 회에 걸쳐 다양한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 다수 소장되어 있다.


대형 필름 카메라인 독일제 린호프 테크니카로 작업 중인 박진영 사진작가. 오랜 응시와 기다림을 필요로 하는 대형 아날로그 카메라는 까다로운 전·후반 작업을 요하지만 박진영은 특유의 감성과 강한 울림을 전하기 위해 이 카메라를 고집한다. 작가 제공 대형 필름 카메라인 독일제 린호프 테크니카로 작업 중인 박진영 사진작가. 오랜 응시와 기다림을 필요로 하는 대형 아날로그 카메라는 까다로운 전·후반 작업을 요하지만 박진영은 특유의 감성과 강한 울림을 전하기 위해 이 카메라를 고집한다. 작가 제공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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