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살다간 부산문학인] (3)구자운
사람 참 투명하고 명쾌했어요
청자수병이 탁자 위에 놓여 있다.절절하고 고아한 멋이 감돈다.그런데 탁자가 흔들려 청자수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진다.이제 청자수병은 고아한 분위기를 벗어버린 벌거숭이 사금파리가 되어버렸다.벌거숭이의 절망 고독 아픔,.
부산에서 태어난 시인 구자운(.1926~1972.사진)의 시적 여정은 그랬다.거기에 삶의 여정도 엇비슷하게 겹쳐진다.
그는 56년 고전미를 발산하는 "청자수병" 등 3편의 시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눈물인들/또 머흐는 하늘의 구름인들/오롯한 이 자리/어이 따를손가?/서려서 슴슴히/희맑게 엉긴 것이랑/여민 입/은은히 구을른 부풀음이랑/궁글르는 바다의/둥긋이 웃음지은 달이랗거니 아롱아롱/묽게 무늬지어 어우러진 운학/엷고 아스라하여라/있음이여!/오,저으기 죽음과 이웃하여/꽃다움으로 애설푸레 시름을 어루만지어라."("청자수병"일부)
언어의 리듬이 그의 이름인 "자운(엷게 피어나는 구름)"처럼 감치면서 번진다.은은히 구르는 부풀음,둥긋이 웃음지은 달이랗거니,의 표현으로 청자의 곡선을 아슴하게 그려내는 일품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그의 시어를 빌리면 "터질 듯한 땀방울"을 속으로 감춘 시어들이라고 할까.이런 "청자수병"의 세계가 그의 초기 시편의 면모들이다.
하지만 4.19가 있었고,그것이 좌절한 5.16이 있었다.60년 4.19이후 "짙은 피로 물들인/큰 길은,이제야 한 아름/젊은 태양을 안았노라"고 노래했던 그는 이제 "벌거숭이 바다"을 마주한다.일본 유학을 하고 서울생활을 하던 그가 다시 부산에 내려와 2년여의 생활을 한 것도 당시였다.그때 가정적인 불운도 겹치는데,그의 시는 어둡고 어둡다."비가 생선 비늘처럼 얼룩진다/벌거숭이 바다. 괴로운 이의 어둠 극약의 구름/물결을 밀어 보내는 침묵의 배/슬픔을 생각키 위해 닫힌 눈 하늘 속에/여럿으로부터 떨어져 섬은 멈춰 선다. 바다,불운으로 쉴 새 없이 설레는 힘센 바다"("벌거숭이 바다"일부)
구자운은 "가장 본질적인 것을 염통으로 부둥켜 안았을 때 터져 나오는 말 그것이면 족하다"고 했다."그는 시를 그의 육체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그의 이미지에 비린내가 나고 그의 시 어디를 잘라도 피가 듣는 것은 이러한 시작 태도에서 연유한다."(허만하 시인의 말).
수필가 이수관의 회고다."시를 참 잘 썼지요.그는 맑고 투명했어요.내성적이며 겸손했는데 자기주장보다 남의 얘기를 듣는 쪽이었지요." 부산에 내려온 구자운은 중앙동 부산호텔 앞 식당 골목에서 기숙했다.그는 술을 좋아했지만 부산에서 교유의 폭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고 한다.내성적인 성격 때문이겠고,당시 그의 개인사적 불운 때문일 수도 있겠다.김규태 시인의 기억이다."사람 참 투명하고 명쾌했어요.사석에서 사적 혹은 시적 고뇌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었어요.눈이 크고 항상 싱긋 웃는 표정이었지요." 그의 시에는 학이 자주 등장한다.사실,투명하고 겸손한 그의 인간적 면모는 이내 학을 떠올리게 한다."벗이여,너희들은 모를 것이다/모를 것이다/왜 내가 언제든 구름인 것을/그리고 학인 것을."
최학림기자 theos@p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