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네이팜탄] 생존자 엄한원씨 증언
나무 하나도 없는데 폭격후 흙바닥이 불타
곡계굴에 폭격이 시작됐을 때 엄한원 씨(81·단양군 영춘면 상2리·사진)는 굴 밖에서 친구 10여명과 놀고 있었다.
그는 전투기가 달려드는 것을 직접 목격한 장본인이다.
"어찌나 낮게 날던지, 그대로 굴 안으로 빨려들 것 같았습니다."
엄 씨는 친구 10여 명과 굴속으로 뛰어들었다.
"냉기를 피해 굴 바닥에 깔아두었던 짚더미에 불이 붙고, 유독가스로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참다못한 엄 씨는 20여분 만에 굴 밖으로 뛰쳐나와 밭 배수로를 향해 달렸다.
"땔감이 없어 나무란 나무는 모조리 베어버렸던 시절이라 도대체 불이 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흙바닥이 타고 있지 뭡니까. 유황처럼 끈적이는 것이, 손에 묻으면 불이 붙었어요."
엄 씨와 함께 굴속으로 들어간 친구 10여 명은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엄 씨는 친구들 이외에도 동생 다섯과 어머니 등 일가 친척 11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그들 모두가 굴속에 남아있다 참변을 당한 것이었다.
"바위로 된 굴이라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숨을 참으면 살 수 있겠다 싶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나만 이렇게 살아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