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사자의 용기, 여우의 지혜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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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권 부경대 정외과 교수

새로운 시대를 만든 역사상의 모든 지도자는 대부분 지나간 시대의 지배자들로부터 고난과 박해를 받으며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거나 시대를 여는 선구자의 역할을 했다. 이런 사실은 고대의 수많은 제왕의 이야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대 페르시아의 왕자 키루스(Cyrus)는 할아버지인 아스티즈(Astyges) 황제의 미움을 받아 죽을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그는 양치기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고, 훗날 아스티즈를 권좌에서 몰아내고 고대 메디아와 페르시아를 다스리는 대제국의 위대한 왕으로 등극했다. 로마 제국의 창시자인 로물루스(Romulus)의 이야기도 그와 유사하다. 위대한 누미토르(Numitor) 왕의 쌍둥이 손자였던 로물루스와 레무스(Remus)는 누미토르 왕을 죽이고 권좌를 빼앗은 아물리우스에 의해 티베르 강에 수장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역시 그런 위기에서 벗어나 늑대의 젖을 먹으며 목숨을 연명했고 결국 장성하여 대제국 로마를 건설한 최초의 왕이 될 수 있었다.

적폐 청산·한반도 평화 기치 불구

문재인 정부 ‘절반의 리더십’ 아쉬움

복잡한 정치 현안 풀어내는 지혜와

민생·경제 보듬는 실천력 못 보여줘

정치·사회·경제 쌓인 난제 풀려면

발상 전환한 혁신적 리더십 요구돼

이처럼 시대를 앞서가는 지도자에겐 반드시 그를 단련시키는 고난이라는 소재가 마련되어 있다.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에게 닥친 고난 역시 고대의 왕들이 조우했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의 리더십을 시험해 보기엔 충분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새로운 안보 환경을 조성하고 소득 주도의 성장 패러다임을 내세웠던 것은 문재인 정부가 미래를 위해 자처한 고난의 길이었다. 과반이 되지 않는 국회 의석을 갖고서도 적폐 청산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문재인 정부에게 험난한 미래는 예고된 결과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런 예고된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 하는 점이다. 근대 정치학의 창시자였던 마키아벨리가 그의 저서 〈군주론〉에서 강조해 마지않았던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지혜를 갖춘 리더십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문 대통령은 그런 점에서 딱 절반만 성공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과반을 넘지 못한 의석을 가진 초라한 집권당의 대통령임에도 취임 초기부터 적폐 청산을 위해 무딘 칼이라도 빼드는 용기를 보여 주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거대한 힘의 균형을 바꿔보고자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과감히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은 딱 거기까지였다. 용기와 의욕은 충분했지만 복잡한 정치적 현안들을 풀어내는 여우의 지혜는 무척이나 부족했다. 정부가 하는 일마다 어깃장을 놓는 제1야당을 국민으로부터 고립시키지 못했고, 결국 적폐의 결정판인 그들이 명분을 만들어 정치의 무대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 합리적 보수를 국정의 파트너로 만드는 데 실패했던 것이고 그 책임은 여우의 지혜가 부족했던 리더십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지난 2년여의 재임 동안 여우의 지혜가 필요했으나 그것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아쉬운 장면들은 차고도 넘친다. 국민들이 강퍅해지는 삶을 견디지 못해 힘들다고 푸념할 때 그들을 어루만지며 고통을 공감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가면을 쓴 보수의 리더십이 그 빈자리를 대체했다. 내가 옳다는 사자후를 토하긴 했어도 팔 걷어붙이고 민생을 챙기는 대통령의 모습을 제대로 연출해 내진 못했다.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그 정의를 실천에 옮길 사자의 용기도 지닌 리더의 고지식함을 목도해야 하는 국민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되돌아볼 대목이다.

이제 집권 3년 차를 보내며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산적한 난제들을 일거에 풀어낼 수 있는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방안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토록 여우의 지혜를 발휘할 때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풀어낸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은 그런 점에서 혁신적 리더십의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알렉산더는 아무도 풀지 못했던 복잡한 전차의 매듭을 과감하게 칼로 베어 풀어버리고 전설 속의 예언대로 아시아를 정복해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단 사실을 일깨워 주는 일화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문제는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의 시각에 있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선택은 여우의 지혜를 갖춘 지도자가 아니면 생각해 내기 어려운 혁신적 사고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문제의 본질에 천착해서 깔끔하게 단칼에 문제를 해결해 내는 능력. 우울한 뉴노멀(New Normal·기존 이론과 규범이 더는 통하지 않는 새로운 정상 상태)의 시대를 살아내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문 대통령에게 바라는 리더십이 아닐까? 그리고 여우의 지혜로 내놓아야 할 첫 번째 혁신안은 바로 국회 입법을 통해 개혁의 제도화를 가능케 만드는 정책연합에 관한 아이디어가 아닐까?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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