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호구생활⑩] 코로나19 재택 5주째…“다들 눈은 멀쩡하십니까”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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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장은미 부산닷컴 기자 mimi@busan.com 그래픽=장은미 부산닷컴 기자 mimi@busan.com

■재택근무 29일…몰려온 ‘검은 아지랑이’

곧 끝날 것 같던 ‘재택근무’가 5주째다. 잠잠해지지 않는 코로나19 때문이다. 지난주까지는 외근을 병행했지만, 전 국민적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이제 현장 취재도 대부분 전화로 대체됐다.

회사가 아닌 좁은 방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꽤 익숙해졌다. 현장 취재가 없을 땐 무려 9시간 컴퓨터를 노려본다. 최근 산 탄력 좋은 ‘게이머 의자’ 덕에 나름 버틸 만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눈에 작은 아지랑이 같은 게 자주 뚜렷이 보인다. 빛 번짐이 심하고, 멀리 있는 것도 흐릿하다. 눈이 건조한 듯 따끔따끔해 자꾸만 감게 된다. 20대 초반 ‘라섹 수술’ 하기 전, 난시가 심할 때의 증상과 비슷하다.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회사 선후배도 이런 증상에 ‘인공 눈물’을 수시로 쓴다고 한다. 맘카페 등에도 “우리 아이 시력 괜찮은 걸까요?” 등 같은 처지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다들 ‘코로나19’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개학 연기, 재택근무 연장으로 컴퓨터, TV,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다. 산책이나 운동도 못 해 ‘눈 피로’도 풀지 못하는 상황. 특히 과도한 게임과 유튜브 시청으로 청소년 자녀들의 눈 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PC→TV→PC→TV→스마트폰

그리운 광안대교 출근길. 정확하게는 출근이 아니라 바다 경치가 그립다는 얘기다. 그리운 광안대교 출근길. 정확하게는 출근이 아니라 바다 경치가 그립다는 얘기다.

돌아보니 나도 그랬다. 일어나자마자 씻은 뒤, 오전 9시쯤 책상에 앉는다. 출근길 여유롭게 광안대교 바다를 보던 눈이 곧장 모니터와 마주한다.

한 번 눌러앉으면 기본 3시간이다. 가끔 전화 취재할 때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다. 화장실 갈 때도 휴식(?)을 위해 스마트폰을 꼭 쥔다.

점심시간이 되면 곧장 거실에 앉아 그리웠던 TV를 본다. ‘그날의 맛집’을 찾아다니고, 카페에 들러 잠깐의 여유를 누리던 점심보다 심플하고 편하다. 그러나 눈은 오전 내내 좁은 집 안만 봐서 피로가 쌓였다.

대략 한 시간의 식사 시간이 끝나면, 또 ‘게이머 의자’에 앉아 오후 6~7시까지 ‘논스톱’ 업무다. 피로한 눈을 돌려봤자 2~3m 방 안이 전부다. 간간이 눈이 피로해 눈을 감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봤자 1분 내외다.

일이 끝나면 또 저녁 식사, 이어 아기를 돌보며 다시 TV를 본다. 아기를 재운 뒤에는 불을 끈 채 소파나 침대에 앉아 낮에 화장실에서 보다 만 유튜브 시청.

두 달 전만 해도 청사포를 오가며 ‘야간 산책’을 했지만, 육아와 코로나19 때문에 이젠 갈 수가 없다. 야외 취재가 없는 날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하루 중 유일하게 50m 이상을 바라볼 수 있다. 눈에는 ‘최악의 일상’이다.


■‘블루라이트’와의 전쟁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으로 봤을 때 PC 모니터 모습. 화면에 핑크빛이 돈다.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으로 봤을 때 PC 모니터 모습. 화면에 핑크빛이 돈다.

블루라이트. TV, 컴퓨터,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에서 방출되는 파란색 계열의 광원이다. 익히 들어서 알겠지만, 시력 저하, 안구건조증 유발, 망막 손상을 일으킨다고. 과학적으로 증명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광고에서 그렇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쓰거나 모니터, 스마트폰에 차단 필름을 붙이기도 한다.

검은 아지랑이를 다시 보니, 예전에 샀던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이 떠올랐다. 3일 정도 쓰다가 가방에 처박히게 된 지 어느덧 2년. 인터넷 쇼핑몰에서 한 2~3만 원정도 주고 샀던 것 같다. 다행히 가방 구석 안경집에 고이 들어가 있었다.

스마트폰에는 ‘블루라이트 필터’ 기능을 켰다. PC에도 미확인 사이트에서 블루라이트 차단 프로그램을 다운받으려 했지만, 바이러스 침투 걱정에 포기했다.

안경을 낀 채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2시간을 보냈다. 처음 2시간은 눈 건조함 등이 체감상 이전과 별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점심 이후 변화가 느껴졌다. 플라시보 효과(진짜 약으로 믿어 좋은 반응이 나타나는 일)일 수 있지만, 빛 번짐이 덜하고 아지랑이가 줄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멀리 있는 물체도 아주 조금 또렷해진 듯하다.

그러나 안경만의 효과로 단정 짓기 어렵다. 점심 후 잠시 안경을 벗어 놓는다는 게, 2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등 띄엄띄엄 안경을 썼기 때문이다. 특히 안경 너머의 ‘핑크빛’이 거슬려, 자꾸만 안경을 뺐다 썼다를 반복했다. 오히려 장시간 쓰다 한 번 벗었을 때, 상대적으로 눈이 더 상쾌해진 느낌이다.


■눈 감기, 창밖 바라보기

10분간 휴식 때 바라본 창밖의 벚꽃 나무들. 올해는 이대로 ‘벚꽃엔딩’. 10분간 휴식 때 바라본 창밖의 벚꽃 나무들. 올해는 이대로 ‘벚꽃엔딩’.

블루라이트 차단에 더해 일정 시간 눈 휴식을 했다. 40~50분 일하면, 10분간 PC, 스마트폰, TV를 외면하는 식이다. 10분 중 5분은 눈을 감고, 나머지 5분은 창밖 먼 곳을 바라봤다.

체감상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보다 효과가 컸다. 5분간 ‘블랙아웃’ 뒤 눈을 떴을 때 상쾌함이 느껴졌다. 다만 식사 직후엔 그대로 장시간 잠이 들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창밖을 바라볼 때는 저절로 나오는 하품 덕에 눈물이 맺혀 눈 건조함이 덜했다. 눈을 쉬면 쉴수록 바라보던 먼 곳의 글자가 뚜렷해지는 느낌도 든다.

여담이지만, 먼 곳을 보며 일어서 있다 보니 허리·목 돌리기 등 자주 스트레칭을 하게 돼 한결 개운하다. 휴식 시간이 보태지니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고, 창밖을 보며 가족 간 대화도 늘었다.

그러나 이런 ‘눈 건강 지키기’는 사실 그렇게 쉽지 않다. 기사 작성에 물이 올랐을 때도 미련을 둔 채 자리를 떠야 한다. 한 번은 집중하다 보니, 2시간 동안 휴식을 잊기도 했다. 사실 알면서도 ‘일의 연속성’을 위해 휴식을 외면했다. 이후 팀장님의 조언대로 스마트폰 알람을 설정해 휴식 시간을 지켰다.

먼 곳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고역이다. 나도 모르게 TV를 곁눈질한다거나, 멀쩡한 공기청정기 상태를 점검했다. 코로나19만 아니면, 한 번씩 밖에 나가 집 주변을 거닐었을 것이다. ‘100% 휴식’도 어렵다. 쉬는 시간에 계속 울려대는 ‘카톡’ 소리를 무시할 용기가 없었다.


■블루라이트?? 글쎄…

안과 전문의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사람들의 눈 건강을 한목소리로 우려한다. 근거리 작업 시간이 길어진 데다, 눈에 이상징후가 나타나도 코로나19 감염 걱정에 병원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동아대병원 류원열 교수는 “정확히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앞이 흐려 보인다거나 눈에 따가울 정도의 건조감이 느껴진다면 이상신호일 수 있다”면서 “시력 저하나 각막염 등의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PC, 스마트폰, TV 등을 장시간 사용하는 영향이 크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블루라이트’가 주원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까운 곳에 오래 집중했기 때문에, 눈 깜빡임 횟수가 줄어 건성안을 일으키는 것이다. 눈을 쉬게 할 때 보다 눈 깜박임이 2배 이상 줄어든다고 한다.

더불어 근거리에서는 수정체가 계속 두꺼운 상태를 유지해, 수정체가 얇아지면서 풀리는 힘이 떨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멀리 볼 때 초점이 맞지 않거나, 잘 안 보이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디지털 기기뿐 아니라 운전, 독서 등 근거리 작업은 모두 이런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증상이 심할 때는 빛 번짐, 두통까지 동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스마트폰, PC 등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가 유해할까.

전문의들은 “근거 없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미국 안과학회에서 스마트폰 블루라이트가 눈 건강에 영향이 없다는 논문이 나왔다고 한다. 또 쥐를 상대로 실험한 결과, 블루라이트든 이를 억제하는 노란 불빛이든 눈에 미치는 영향이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고. 이들은 당연히 시력 보호를 위해 블루라이트 차단 필름, 안경을 사는 것도 추천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블루라이트가 ‘수면의 질’은 떨어뜨릴 수 있다.

부산백병원 양재욱 교수는 “과학적으로 동의하는 건 스마트폰 블루라이트가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라며 “사람이 수천만 년 자연광 속에서 살아왔는데, 이에 비하면 디스플레이가 주는 자극은 매우 약하다”고 말했다.

류 교수도 “블루라이트 유해성이 너무 과장되게 알려져 있다”면서 “아주 장기간 노출돼야 드물게 황반 변성, 망막 질환이 생길 위험이 있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더 위험


최근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집에서 PC, 스마트폰 게임을 즐기는 아동·청소년들이 많다. 부산일보DB 최근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집에서 PC, 스마트폰 게임을 즐기는 아동·청소년들이 많다. 부산일보DB

어쨌든 PC, 스마트폰 등에 장시간 집중하는 건 눈 건강에 매우 해롭다. 특히 시력 상승이 진행되고 있는 아동·청소년들에게는 더 치명적.

특히 하루 3~5시간가량 쉬지 않고 집중할 경우에는 급성 내사시(눈이 몰리는 현상)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내사시는 원래 초등학교 입학 전 유아들에게 나타났으나, 최근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늘면서 10~20세까지도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10년 전과 비교해 발생 빈도도 높아지는 추세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영상통화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신생아, 유아를 둔 부모의 걱정이 크다고. 그러나 수 시간 통화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반드시 최소 10분 휴식

전문가 의견을 종합할 때 가장 중요한 ‘눈 건강 노하우’는 휴식이다.

30~40분 연속 근거리 작업을 하면 10~15분은 쉬도록 권장한다. 휴식이 불가능하다면, 모니터나 스마트폰과의 거리를 최소 40cm 이상 띄워야 한다.

휴식할 때는 눈을 감고 있거나, 창밖을 바라보는 게 좋다. 막연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원거리의 특정 타깃을 정해 보는 것이 더 좋다. 가령 반대편 건물 간판의 한 글자를 보는 식이다.

화면을 볼 때는 최대한 밝은 곳에서 봐야 한다. 어두울수록 동공이 열려 자극적인 빛이 더 들어갈 수 있다. 온풍기나, 스팀 에어컨 등을 얼굴에 직접 쐬는 것도 피해야 한다. 또 눈이 건조하지 않도록 집 안 습도를 40~60%로 맞추는 게 좋다.

블루라이트 차단 아이템을 사기보다, 차라리 인공 눈물이나 루테인 등이 들어 있는 영양제를 추천한다. 인공 눈물은 오염된 손으로 눈을 만졌을 때, 즉시 넣으면 소독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미세먼지로 뒤범벅이 됐을 때도 수돗물로 씻기보다, 인공 눈물을 넣는 게 좋다. 영양제는 안 먹는 것보다 나을 뿐이지, 확실한 예방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슬호생’ 결과 중요한 것은 생활 습관이다. 지금부터라도 내 눈이 ‘한계점’에 와 있다는 생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근거 없는 광고에 휘둘려 이런저런 아이템을 사면 스스로 ‘호구’가 될 뿐이다.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갔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앞으로도 미세먼지나 또 다른 감염병 등이 내 눈을 위협할 것이다. 지금의 이상 신호를 무시하면, 그땐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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