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참배·여야정 협약…‘중도보수’ 박 시장의 통합 행보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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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부산시청 7층 국제의전실에서 부산시정 실현을 위한 여야정 협약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박형준 부산시장, 신상해 부산시의회 의장, 하태경 국민의힘 부산시당위원장. 정종회 기자 jjh@ 10일 오전 부산시청 7층 국제의전실에서 부산시정 실현을 위한 여야정 협약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박형준 부산시장, 신상해 부산시의회 의장, 하태경 국민의힘 부산시당위원장. 정종회 기자 jjh@

‘성숙한 민주주의와 공정한 사회를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9일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박형준 부산시장이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보수 정당 소속 부산시장으로서 첫 참배 자체도 ‘파격’이었지만, 방명록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 역시 적잖게 화제가 됐다.


경선 경쟁자 박성훈 경제특보 영입

여당 소속 김경수·송철호와 협치

친여 부산상의 회장과 적극 소통

지역 정·관계 “신선한 시도” 평가


박 시장은 페이스북에 “노 대통령이 표상하는 성숙한 민주주의와 인권, 공정의 가치는 여전히 오늘의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며 “통합의 정치는 진영을 넘어 전직 대통령들이 남긴 역사적 공로를 기억하려는 따뜻한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통합과 협치 선언의 연장선이라고는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핵심 참모 역할을 맡았던 박 시장으로서는 부담감을 가질 일이어서 꽤나 파격적인 행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지난달 8일 박형준 부산시장이 취임한 뒤 한 달간 보여 준 ‘합리적 중도 보수’를 표방하는 광폭 행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역 정·관계의 관심이 뜨겁다. 봉하마을에 동행한 이성권 정무특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특정 진영의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님이 봉하마을행을 결정했고, 방명록에도 평소 생각을 적었다”며 “특별한 전략에 따른 게 아니라, 지방이 소멸되는 상황에서 부산 발전을 위해 정당과 이념, 진영을 넘어선 통합적인 정치가 필요하다는 공동체 중심의 함께 행복한 사회라는 자신의 철학을 실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이전의 부산시장들과는 사뭇 다른 선택과 행동을 이어간다. 취임 초 경선 경쟁자였던 박성훈 전 경제부시장을 경제특보로 영입하고,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소통했다. 중도 보수의 장점을 살려 여당 소속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송철호 울산시장을 부산시로 초청해 메가시티 추진을 포함한 포괄적인 협치를 추진했다. 비상경제대책회의 등을 통해 친여 성향이 강한 장인화 부산상의 회장과도 격의 없이 소통하며 지역 상공인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9일 박재호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과 만난 뒤 봉하마을을 방문한 데 이어 10일에는 박 위원장, 신상해 부산시의회 의장, 하태경 국민의힘 부산시당위원장과 함께 ‘부산 미래와 시민에게 힘이 되는 부산시정 실현을 위한 여야정 협약서’에 서명했다. 이들은 ‘(가칭)부산 여야정 상생협의체’를 구성하고, △가덕도신공항 조속 건설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AI·스마트 북항 항만재개발 △동북아 국제경제 중심도시 △경부선 철도시설 효율화 △부울경 메가시티 추진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박재호 시당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어떤 선거 결과가 나왔어도 이제 여야가 함께 부산을 위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돼야 한다는 데 모두 공감한다”면서 “부산을 위해 움츠렸던 여러 현안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야 부산이 살고, 대한민국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소통과 협치로 지역 사회를 끌어안는 박 시장을 두고 지역 정·관계에서는 ‘신선한 시도’라는 반응이 많다. 관료 출신 등 과거 시장들이 보여 주지 못했던 이런 모습은 첫 중도보수 시장이라는 장점을 살려 중도에 가까운 민주당과 협치를 통해 성과를 내는 상징적인 행보라는 시각이다. 지역 정치권의 한 인사는 “지난 보선에서 확인했듯이 중도층 유권자인 이른바 ‘스윙 보터’가 급격하게 늘어난 상황에서, 부산 주류 사회의 변화 측면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박형준’과 ‘장인화’라는 이름을 놓고 보면, 진보와 보수를 떠나 부산의 주류가 교체되는 현상을 보여 주는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 속에서 지지부진했던 부산이 비주류였던 인물들이 ‘판을 바꾸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진단이다.

이성권 특보는 특히 봉하마을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 보수 정치인이 봉하마을에 가면 물병을 던지는 모습이 흔했지만 9일에는 시민들이 박 시장에게 사진 촬영도 요청하면서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보수 진영에서도 비난이 크게 없었다”면서 “국민들이 진영 갈등에 지쳐 새로운 통합을 원하고 있는데 우리 정치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걸 현장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박형준, 하태경, 이성권이라는 이름이 그간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결이 다른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현안을 풀어내기 위해 야당 시장으로서 여당과의 협치가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그런 면에서 앞으로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박 시장 입장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입지를 다지고 성과를 내기 위해 여당과 맞춰 가려 할 텐데, 이런 ‘허니문’이 얼마나 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경계했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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