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강 영웅’ 유상철 “당신의 열정을 기억하겠습니다”
‘2002년 월드컵 영웅’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별세했다. 당시 4강 진출을 견인한 유 전 감독은 암 투병 끝에 7일 숨졌다. 향년 50세.
유 전 감독은 인천 사령탑에 있던 지난 2019년 10월 황달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그는 인천 훈련장이나 경기장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며 건강을 회복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올 초에는 자신의 현역 시절을 돌아보고, 후배들을 조명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등 더 활발하게 활동하며 그의 사령탑 복귀를 바라는 팬들의 기대감을 부풀렸다.
암 투병 1년 8개월 만에 별세
축구계 안팎 애도 물결 이어져
체력·수비 갖춘 만능 플레이어
2002 월드컵 폴란드전 추가 골
대전·전남·인천 감독 역임
하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병세가 악화한 유 전 감독은 결국 투병 1년 8개월여 만에 팬들의 곁을 떠났다.
유 전 감독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 키 183㎝의 탄탄한 체구에서 비롯된 강철 체력은 물론 골 감각과 헤딩, 수비 능력 등을 두루 갖춰 만능 필드 플레이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서울 응암초등학교 시절 축구부 지도교사에 의해 발탁돼 축구를 시작했다. 경신중과 경신고, 건국대를 거쳐 1994년 울산 현대에 입단한 유 전 감독은 유럽 무대에서도 통할 만한 재목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프로 첫해 수비수로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됐고, 1998년엔 미드필더, 2002년엔 공격수로 베스트 11에 뽑힐 정도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1998년엔 K리그 득점왕(15골)까지 차지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3차전 동점골, 2002 한일 월드컵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추가 골 등 태극마크를 달고도 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뒤 히바우두(브라질), 미하엘 발라크(독일) 등과 대회 올스타 미드필더 부문에 뽑히기도 했다. 유 전 감독은 울산 현대와 요코하마 마리노스(일본), 가시와 레이솔(일본)을 거치며 12년간 프로 생활을 한 후 2006년 울산에서 은퇴했다. 청소년 대표와 올림픽 대표, 국가대표를 지낸 그는 한일 월드컵에서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4강 신화 달성에 앞장섰다. A매치(국가대표팀간 경기) 기록은 124경기 18골이다.
은퇴 이후 유 전 감독은 방송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며 대중에 한층 친근하게 다가갔는데, 당시 지도를 받은 대표적인 선수가 한국 축구의 미래로 성장한 이강인(발렌시아)이다.
2009년 춘천기계공고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1년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을 맡아 프로 사령탑으로 데뷔, 이듬해까지 지휘했다. 2014년부터는 울산대 감독으로 경험을 쌓은 그는 2018년 전남 드래곤즈의 부름을 받아 프로 무대에 복귀했으나 8개월 만에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2019년 5월 부임한 인천은 그가 몸담은 마지막 팀이 됐다.
축구계 안팎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 공식 계정에 유 전 감독의 선수 시절 국가대표 경기 출전 사진과 함께 “한 번 월드컵 영웅은 언제나 월드컵 영웅”이라며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인천 구단은 인스타그램 계정에 “당신의 열정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소서”라고 올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은 한국어 트위터 계정으로 “우리들의 2002 월드컵 영웅이었던 유상철 감독이 췌장암 투병 끝에 향년 50세의 나이로 별이 되었다”며 추모했다. 특히 올림픽 대표팀의 제주 훈련에 소집돼 12·15일 가나와의 평가전을 준비 중인 이강인은 8일 인스타그램에 어린 시절 유 감독과 공을 차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라는 추모의 글을 올렸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천영철 기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