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장에게 듣는다] 지역의료분권으로의 대전환
안희배 동아대병원 병원장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부산 거주 60대 여성은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 서울지역 빅5 병원 중 한 곳을 어렵게 예약했다. 진료당일 그 병원 담당 의료진은 부산에도 훌륭한 의사가 있다며 부산 A대학병원 혈약종양내과 김성현 교수를 추천했다.
# 알콜성 간경화를 진단받은 50대 중반 남성은 간 이식을 위해 서울지역 S병원을 어렵게 예약했다. 기증자인 아들은 신문기사와 각종 SNS를 심도 있게 조사한 결과 부산 A대학병원 장기이식센터 김관우 교수를 최종 선택했다.
위의 사례는 우리 부산에도 훌륭한 명의가 많다는 사실과 이들 명의를 부산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전에 부산권의료산업협의회와 부산시가 공동으로 부산지역 4개 대학병원과 보건복지부 지정 전문병원 소속 전문의를 대상으로 지역의료서비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부산지역 의사들이 서울에 뒤지지 않는 의료기술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수술의 성공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합병률과 부작용에 대한 평가에서 부산 의료기관들은 서울의 주요 병원에 전혀 뒤지지 않는 성적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답답한 실정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0년 부산지역 환자의 역외유출 통계에 따르면 부산지역 환자들이 서울 등 수도권에게 진료 받은 비율은 15.9%인 58만여 명으로 대구(15.2%)보다 높다. 이로 인한 지역의 손실은 역외유출 진료비가 7700억 원, 환자 및 보호자의 숙박비와 교통비 700억 원, 그리고 기대수익 감소 등을 합치면 1조 원으로 불어난다. 2022년 부산시 예산규모가 14조 원임을 감안할 때 엄청난 금액이다.
최근 부울경 특별지방자치단체 합동추진단이 신설되고 부울경 메가시티를 준비하고 있다. 산업·경제, 교통·물류, 문화·관광, 교육, 보건·복지 등의 분야에서 개별 지자체가 아닌 특별지자체가 행정을 수행한다는 의미다. 지역의료계도 의료서비스 이용의 수도권 쏠림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 의료 분권을 통한 부울경 의료관리체계 구축으로 수도권 의료기관과 상대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공감하고 있다.
지역 의료계가 지역 의료분권을 통해 환자 역외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지역주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의료계가 의료와 관련된 이슈와 어젠다를 개발, 선점하고 의료서비스 수준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또한 지역의료분권을 위해 △상급종합병원 역량 강화 △의료기관 간 진료의뢰·회송 활성화 △보건의료 자원 공동 활용 △의료인력, 병상 등 보건의료자원 효율적 이용 △응급의료 이송시스템 구축 △ 응급, 심뇌혈관, 외상 등 필수 중증의료 협력 체계 강화 △부울경 의료빅데이터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하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0년 사망 원인’에 따르면 부산은 심장질환 사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뇌혈관질환 사망률이 두 번째로 높았다. 심뇌혈관질환은 단일 질환 사망원인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응급질환이다. 1분 1초에 생사가 달린 골든타임을 서울지역병원에 기대해선 안 되고 기대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