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프랑스를 횡단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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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성매매방지법 18주년
법 개정 촉구 개정연대 전국 행진
성매매 여성 처벌 전면 삭제 촉구
성매매는 여성 폭력이고 인권침해
성매매 여성 로젠 반대 운동 기폭제
유럽의회 성 평등 모델 참고해야

9월 23일은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지 18주년이 되는 날이다. 2004년 시행된 성매매방지법은 성매매 여성을 사회적,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보고 처벌해 왔던 과거 윤락행위등방지법과 달리 성매매를 여성 폭력의 한 형태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 낸 의미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 성매매방지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개정연대가 9월 19일부터 전국 행진을 시작하였다. 제주에서 시작해 이곳 부산을 거쳐 창원, 전주, 군산, 대전, 평택, 원주 그리고 서울까지 이어지는 여정이다. 이들은 현행 성매매방지법에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 조항을 전면 삭제하고 수요 차단과 알선자 처벌을 중심으로 하는 성평등 모델의 전면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1999년 스웨덴에서 처음 시행된 성평등 모델은 ‘성 구매 금지법’으로 성매매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부과하여 처벌해 온 기존의 법 규범을 뒤집어 성의 구매와 그에 따르는 알선을 전면 금지하고 처벌하였다. 그 결과 성 구매 비율이 13.6%에서 7.9%로 감소하였고 인신매매 등 다른 범죄도 줄어들었다. 2014년 유럽의회는 성착취 인신매매를 줄이고 성평등을 증진하기 위해 이 모델의 도입을 권고하였고,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아일랜드, 캐나다, 이스라엘,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 성 구매 금지법을 도입, 시행 중이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 성매매 여성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지 못하면 여전히 범죄자로 처벌받고 있다.

한편, 개정연대의 행진과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국제 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프랑스의 전 상원의원 모드 올리비에가 내한한다. 사회당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성평등 모델을 제안, 통과시킨 정치인이다. 이번 국제 포럼을 통해 프랑스가 왜 성매매에 있어 성평등 모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 입법 과정과 의미에 대해 공유할 예정이다.

프랑스에서 법 제정에 결정적 공헌을 한 또 다른 여성이 있다. 그의 이름은 로젠 이쉐르. 프랑스의 성매매 경험 당사자다. 로젠은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 품에서 행복하게 자랐지만 이후 삼촌과 이웃의 아저씨에게 성폭력을 겪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결혼을 했지만 남편은 일상적으로 폭력을 일삼았다.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한 길을 찾았다. 어느 날 마사지 업소에서 일을 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두 명의 포주에게 집중적으로 성추행과 강간 피해를 입었다. 포주들은 이것이 ‘일’이라고 했고, 로젠은 이것이 ‘인생’인가 보다 했다.

어느 날 로젠은 성매매를 하던 와중에 자신이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천장에서 자신과 구매자를 내려다보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그는 이것이 해리장애의 일종으로, 극심한 폭력을 겪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천천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9세 때 이후로 자신의 삶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성매매가 자신에게 그토록 폭력적이라고 깨닫지 못했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로젠은 마사지 업소를 그만두었다. 생계와 착취가 분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성매매는 더 이상 폭력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생계의 위협을 받는 일이기도 했다.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지원도 받았다. 가족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성매매 여성이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가족들은 로젠을 응원했고, 그는 더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 로젠은 프랑스에 새로운 성매매 법의 도입을 촉구하며 프랑스 전역을 횡단했는데, 그의 딸이 이 여정에 함께했다. 로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프랑스 시민들은 성매매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철폐’라고 입을 모았다. 모드 올리비에 역시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인 프랑스 시민 중 한 명이다.

2016년, 성매매를 개인의 사생활로만 치부하던 프랑스에서 마침내 성평등 모델이 도입되고 성매매에 대한 공적 개입이 시작되었다. 국제성매매철폐연합(CAP International)의 표현에 따르면 이는 시장의 힘으로부터 성을 해방시킬 것을 요구함으로써, 돈을 대가로 타인의 몸을 통제할 권리를 철폐하고자 함이다. 성매매는 여성 폭력의 한 형태이며, 평등의 장애물이고, 인권침해다. 로젠은 이 말을 하기 위해서 800km를 걷고 또 걸었다.

법 제정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한국의 성 산업은 여전히 거대한 규모로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착취하고 있으며 온라인으로 더욱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정치권에서도 성매매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구매자보다 성매매 여성이 더 많이 기소되고 있다. 로젠이 한국에 살았다 하더라도 처벌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로젠의 여정은 끝을 맺었지만 한국에서 성매매방지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행진단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변정희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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