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숙 감독 “음악제 개최만큼이나 후진 양성 중요” [2024 통영국제음악제]
■통영 진은숙 예술감독 인터뷰
“음악제 퀄리티는 우리가 최고
가장 힘든 건 해외 연주자 섭외
지멘스상 ‘독일서도 인정’ 기뻐”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곡가로 자리 잡은 진은숙(62)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은 1년 중 한 달 정도는 자신이 관여하는 두 개의 음악제(통영국제음악제, 웨이우잉 국제음악제)를 위해 한국(통영)과 대만(가오슝)에 머문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의 교육 프로그램 ‘TIMF 아카데미’는 직접 진행한 지 3년이 됐다. 순수 음악제 기간은 열흘이지만, 통영에 머무는 시간은 2주 남짓이다. 그 외 대부분의 시간은 독일 베를린 자택에서 보낸다.
지난 1월 말 ‘클래식 음악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한 소식이 알려진 뒤 처음으로 진 감독을 통영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워낙에 큰 상이어서 수상 소식이 알려진 뒤 달라진 점이 있는지부터 물었다. 시상식은 5월 뮌헨에서 열린다.
“상을 받았다고 제 일상이 달라진 건 없어요. 그전에도 여러 번 큰 상을 받긴 했는데, 이번 상은 피부에 와닿는 게 조금 다르긴 했어요. 무엇보다 제가 거주하며 활동하는 제2의 고향 독일에서 중요한 상을 받아서요. 왜냐하면 저는 외국인이고, 동양인이고 여자라는 점에선 더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으니까요. 수상 소식을 알게 된 건 지난해 8월이었는데, 재단에서 공식 발표 때까진 알리면 안 된다고 해서 대나무 숲에 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습니다(하하).”
내년 5월까지 완성해야 할 오페라 작곡으로 어느 때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그이지만, 통영에 오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고도 했다. 통영에 머무는 동안에도 여유가 있으면 곡을 진척시킬 요량으로 작곡에 필요한 것들, 예를 들면 오선지와 연필, 지우개는 늘 “싸 들고” 오지만, 음악제 일정이 빡빡해 작곡 작업은 거의 못 한다. 바이올리니스트나 피아니스트가 하루라도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작곡도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맥이 끊기면 그다음에 다시 시작하기가 되게 힘들기 때문”이란다.
지금 작업 중인 오페라는 내년 5월 독일 함부르크 극장에서 초연될 예정이다. 진 감독은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7) 이후 작업하던 후속작 ‘거울 속의 앨리스’가 초연이 중단되면서 작업을 중단했다. 그리고 이번 오페라 작업이 사실상 두 번째인 셈이다. 제목은 ‘Dark Side of The Moon’으로 정해져 있단다.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1900~1958)와 정신의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을 소재로 한 오페라인데, 대본 기초가 되는 이야기는 완성했어요. 곡은 1시간 정도 썼고, 계속 써야죠. 곡 작업은 작년부터 해서 정말 급해요. 이제 점점 나이는 들어가고, 그래서 요즘은 불필요한 것들은 가급적 거절하고 중요한 것만 포커스를 두려고 해요. 저는 여러 곡을 동시에 쓰지 않으니 다른 건 이게 끝나야 할 수 있어요.”
말만 들어도 고통의 시간이 밀려오는 듯했다. 마감 시간을 정해 놓고 써내야 할 오페라 대작. 지난해 초 오케스트라 곡을 하나 쓴 뒤로는 이 작업에만 매진하고 있다. “창작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흔히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거나 입학시험을 본다는 게 힘들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건 인생에 한두 번 겪고 지나는 일이지만, 작곡은, 창작 작업은 평생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남다르고 힘든 거죠. 저는 그래서 좋은 작곡가는 다 존경합니다. 작곡가는 결국 작품으로 말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진 감독은 핀란드 명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랄프 고토니의 아들인, 피아니스트 마리스 고토니와 결혼해 아들이 한 명 있다. 18세 연하인 남편은 통영에 와서도 늘 함께하는 모습이었다.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사람, 음악제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6년 전부터는 남편이 많이 바빠져서 외국에서 일을 계속하다 보니 제가 조금은 힘들긴 했죠. 노르웨이 일이 끝나고 브뤼셀로 옮겼어요. 지금은 벨기에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를 하고 있는데 가을부터 핀란드교향악단 총감독으로 일할 예정입니다. 아들도 이제 대학생 나이라서 힘든 ‘워킹맘’ 시기는 거의 지났다고 봐야죠.”
서울시향 상임 작곡가로 몸담았을 때도 그랬지만, 진 감독은 후진 양성에도 꽤 관심이 많다. ‘TIMF 아카데미’를 직접 진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해 진 감독의 개인적인 인연으로 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음악가로 초빙한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는 마스터클래스로 3명의 학생을 선발해 지도했는데, 그중 김서현 학생이 만 14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2023 티보르 버르거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해 화제를 뿌렸다.
“음악제 개최도 중요하지만 후진 양성과 젊은 연주자들에게 새로운 연주 기회를 제공하는 데도 신경 쓰고 있습니다. 한국 출신의 라이징 스타 연주자만 하더라도 언제 카바코스와 같은 대가와 앙상블 연주할 기회가 있겠습니까.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에서 유명한 단체를 몽땅 데려오면 쉽지만, 그게 아니라 일정 퀄리티를 유지하는 근간의 오케스트라(올해는 홍콩 신포니에타 단원이 40% 차지)를 베이스로 정하고, 국내외로 흩어져 있는 우리 연주자를 불러 모으거나 시즌 단원을 채워서 연주하는데, 그런 합주 경험 자체가 젊은 연주자들한테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이럴 때마다 수석 자리를 교대로 배치한다든가 사무국에선 신경 쓰이는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어쨌든 진 감독은 음악제 주제를 정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주자를 결정하고 섭외하는 일을 3년째 하고 있다. 애로사항은 없을까. “통영이 해외 연주자들에겐 접근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죠. 먼 곳까지 오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가장 어렵습니다. 하지만 (음악제의) 퀄리티는 저희가 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페스티벌의 수준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동시에 옛날처럼 축제 분위기가 좀 더 살아나는 방법과 해외 관객을 모시기 위한 홍보 라인업 발표를 서두르는 것도 함께 모색하겠습니다.”
한편 진은숙은 2004년 첫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으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엔 시벨리우스 음악상(2017년), 크라비스 음악상(2018년), 바흐 음악상(2019년), 레오니소닝 음악상(2021년) 등 권위 있는 상을 쓸어 담았다. 세계 정상급 악단들은 앞다퉈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2022년 런던심포니는 그의 바이올린협주곡 2번을 초연했다. 지난해엔 사이먼 래틀 지휘의 베를린필하모닉과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협연한 바이올린협주곡 1번 등을 포함한 음반 ‘베를린필 진은숙 에디션’을 발매하기도 했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