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 康明道·趙明哲씨 일문일답
軍部 吳振宇 吳克烈派간 세력 다툼 中國체류 일정 넘기자 체포령 새로운 우상화방법 오히려 역효과 초래
북한 姜成山총리의 사위 康明道씨36)와 金日成종합대학 경제학부 전임강사 趙明哲씨(34)의 귀순 기자 회견은 이들이 북한핵심 권력층의 인척 또는 아들이라는 점에서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27일 오후 2시부터 약 3시간여 동안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북한 상층부의 생활과 권력내부갈등 등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북한체제에 대해서는 북한주민들이 불안감과 반감을 갖고 있으나 이를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해 북한의 체제위기의 심각성을 대변해 주었다.
다음은 두 사람의 일문일답 내용.
-귀순 동기는.
▲康明道씨=지난 89년 인민무력부 보위부대학 연구실장으로 근무하다 군부 내의 알력으로 희생돼 정치범 18호 관리소에 2년간 수용된 적이 있다. 이때 비참한 생활을 직접 겪었고 함께 있던 수용자들이 구타 또는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보고 심한 회의를 느꼈다.
96년 3월 릉영륜전합영회사 부사장으로 취임 후 철강과 일본 중고차를 중국에 수출한 뒤 대금을 회수하기 위해 지난 해 12월 18일 중국에 갔으나 체류일정인 1주일을 넘기게 됐다. 약 한 달간 대금회수가 지체되자 행방불명됐다는 보고가 들어갔고 金正日이 체포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귀순을 결심했다.
▲趙明哲씨=남산고등중학교 재학시절 김일성의 아들 김평일 김영일과 같이 공부했다. 김정일 체제의 장애요인인 김성애와 김평일 등을 제거하기 위한 「곁가지 바람」이 불면서 김평일의 담임선생과 친하게 지내던 선생들이 쫓겨난 일이 있었고 김성애와 그 아들들을 만나는 것도 조직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실망스러웠다. 대학에 근무하면서 남한 정보를 항상 접할 수 있었고 체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이 체제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 혼자 편하겠다고 내려온 게 아니다. 나 같이 편하게 지낸 사람이 왜 「조국」을 떠나야 했는가를 권력층 사람들이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 귀순을 결심했다.
-장인 姜成山총리와 가족에게 귀순의사를 밝혔는가.
▲康씨=지난 해 12월 중국으로 출국할 당시는 귀순할 의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 나의 귀순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그의 정치적 위상에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군부 내 권력다툼이 있는가.
▲康씨=吳振宇와 吳克烈의 세력이 기본적으로 대립하고 있고 각 군단별로도 세력다툼이 있다. 한번은 吳振宇 인민무력부장이 지난 87년 김정일 주최 만찬에 다녀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공석 중인 동안 오극렬 총참모장이 인민무력부장직을 대행하면서 자신의 측근들로 총참모부를 채웠던 일이 있다. 오진우가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해 복귀하면서 오극렬의 인사조치 사실에 분개, 김일성에게 『혁명 2세대인 오극렬이 이럴 수 있느냐. 업신여긴다』고 탄원했다.
이에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오극렬을 교체할 것을 지시했으나 김정일이 오극렬을 두둔했다.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는가.
▲康씨=지난 93년 말까지 핵탄두 5개를 보유하고 있다. 94년도까지 10개를 보유한 뒤 외국에 공개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金正日은 핵을 공개할 경우 北·美회담 등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의도는.
▲康씨=북한이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비를 줄여야 한다. 북한지도부는 핵을 보유할 경우 남한과 미국으로부터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데다 재래식 무기도 크게 줄일 수 있는 만큼 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은 북·미회담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에 대해 시간 끌기 작전을 쓰고 있다는 뜻인가.
▲康씨=맞다. 핵탄두 10개를 보유하게 될 때까지 시간을 끌자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전쟁도 두렵지 않으며 교류를 해도 그 다음에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문제는 어느 정도인가.
▲康씨=지난 91년부터 청진에 있는 화학섬유공장이 연료가 없어 가동 중단된 상태다. 지난 93년에는 9월 한 달 동안 김책제철소가 가동 중단되기도 했다. 이는 중국에서 원료공급이 중단됐고 전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지식인들은 북한의 체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趙씨=나는 고위층 자녀로서 장·차관급 자제들이 다니는 남산고등중학교와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하는 등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하층 인민들의 고통은 잘 모르고 있다.
그러나 학자로서 북한 사회에 뿌리박고 있는 체제를 분석하는 기회를 많이 가지면서 북한이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지식인들은 김정일이 자신의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이복동생들을 제거하는 등 전횡하는 데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
-남한에 대한 정보는 어떤 방법으로 입수했는가.
▲趙씨=남산고등중학교 시절에는 남한 신문을 볼 수 있었고 아버지가 건설부 부장으로 일할 때 장관급 이상 고위직에게 보급되는 국제정세 남조선정세 과학 기술정세 등에 관한 「참고통신」을 아버지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이 통신은 논평 없이 있는 그대로 사실만 기록돼 있다. 또 지식인들 사이에는 이 같은 정보가 비밀리에 나돌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金日成 사망으로 집단 통곡하는 등의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趙씨=북한의 주체 사상은 공산주의 이론을 창조적으로 현실에 맞게 적용했다고 주민들은 세뇌당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 주민들은 주체 사상이 대중과 민중을 위한 이론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만든 김일성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은 크게 이상하지 않다. 또 주민들이 그토록 슬퍼했던 것은 앞으로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불안감도 크게 작용했다. 김일성이 없는 북한사회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귀순이나 탈출의 조짐이 확산될 것으로 보이는가.
▲趙씨=김정일의 정치 스타일이 즉흥적이고 변덕스러워서 김정일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향후 그의 정책에 따라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 나의 제자들도 김정일 체제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가족 문제로 쉽게 귀순과 탈출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정무원의 간부들은 개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趙씨=정무원에는 분파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이 경제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개방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金평일과 金영일은 어떤 인물인가.
▲趙씨=개인적으로 신망이 있고 사람들을 끄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김평일이 남산고등중학교 졸업 후 옛 담임선생 및 일부 교사들과 저녁식사를 했다는 이유로 이들 교사들이 모두 퇴직당하는 등 김정일의 견제가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 「곁가지」와 식사 대화 사진찍기 등을 금물로 여기고 있다.
-북한의 주체 사상에 대해서는.
▲康씨=한총련이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해 신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북한의 현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노동자들보다는 학구열이 높고 혈기왕성한 학생들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대남사업부 통일전선사업부 6과에서 담당하고 있다.
-金正日은 어떤 인물인가.
▲康씨=한마디로 성격이 급하고 변덕스럽다. 저돌적이기도 하다. 반면 눈물이 많기도 하다. 별장에서 측근들과 술을 먹다가 죽은 어머니 김정숙 이야기를 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동생 경희가 울자 막 야단을 치고는 자신도 눈물을 흘리더라고 들었다.
영화를 비롯환 예술분야에 대해서는 상당한 조예가 있으며 피아노 실력은 전문가 이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측근들과 술을 마실 때는 눈물을 흘리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은 매우 좋은 편이다.
또 그는 과묵한 편이며 측근들에 대해 가장 큰 만족 표시는 살며시 미소 짓는 것이다.
-기쁨조의 실상은.
▲康씨=지난 78년 대남선전사업부가 문수초대소에 기쁨조를 두고 金正日을 초청한 것이 최초이며 그 이후 허담이 기쁨조를 만들었다. 지난 85년부터 金正日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업무가 과다, 기쁨조의 기능이 약화됐으며 그때부터 「보천보악단」등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초대소는 각 도에 3개씩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평양과 함북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대동강변에 있는 문수별장과 용성구역에 있는 55호 별장이다.
-북한의 외화 보유고는.
▲康씨=대성은행이 마카오은행, 스위스은행 등 세계 각 도시에 있는 은행에 비밀리에 외화를 유지하고 있으나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다. 이는 중앙당 39호실 1부부장이 담당하고 있다. 이 돈은 전쟁이 나면 사용할 목적으로 유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의 처는 누구인가.
▲康씨=김정일의 본처는 김영숙으로 딸을 둘 두고 있으며 최근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또 만수대 무용단 출신의 고영희와의 사이에도 1남1녀를 두고 있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출신인 성혜림과 같이 지내기도 했다. 성혜림은 김정일과 교제시 이미 아들을 둔 유부녀였다. 그러나 김정일은 그녀의 본 남편을 프랑스 유네스코본부로 보내 강제로 이혼시켜 버렸다. 성혜림은 김정일과 몇 년 지내다가 소련으로 나갔다. 이들 사이에 난 아들이 김정남(23)인데 김정일을 아버지로 부르지 못한다.
-김정일의 처남인 장성택의 실권은 어느 정도인가.
▲康씨=3대혁명소조부장 장성택은 이미 지난해 12월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임명돼 그 실권을 인정받았다. 부장은 공석으로 돼 있어 모든 업무가 장성택에 집중돼 있다. 전임 윤승관 제1부부장은 친구인 고갑종 검열담당 1부부장과 함께 방자하게 놀다가 쫓겨났다.
-결혼과정은.
▲康씨=나는 두 번 결혼했다. 맨 처음에는 김정일의 기쁨조출신과 결혼했으나 내가 관리소로 수용되자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할 것으로 알고 도망갔다. 내가 관리소에서 나온 후 내 동생과 같은 직장에 있는 강성산의 딸을 소개받게 되었다. 강성산의 딸 강희영도 한 번 이혼한 상태였다. 자식을 낳지 못한 데다 강성산이 함경북도로 좌천됐을 때 이혼당한 것으로 안다.
-김정일의 우상화는 어느 정도인가.
▲趙씨=김일성은 김정일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김일성 자신과 같이 신격화했다. 그러나 김일성이 자신의 우상화를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기 때문에 새로운 우상화방법이 오히려 김정일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예를 들면 「새가 날아도 김정일을 위해 난다」「정일봉에 무지개가 걸려도 김정일을 위한 것」이라는 식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빼면 방송이 안 된다.
사람들은 하루 24시간 동안을 김일성과 김정일 이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