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임오년 말띠' 띠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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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제왕출현 예고 수행

경주 김유신묘 십이지신상 중 말.

말띠해인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둘러싼 논쟁이 식을 줄 모르고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임오년 말띠해를 열면서 뜬금없는 개고기 타령. 우리 민족이 예로 부터 소고기나 돼지고기 뿐만 아니라 개고기는 먹으면서도 말고기는 좀체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말은 개나 돼지와 같이 인간과 가까운 가축이면서도 이들과는 등급이나 품격이 달랐다.

'말가는데 소도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말은 다른 짐승을 이끌어가는 우두머리였다. 주몽 신화나 박혁거세 신화와 같이 새 국가의 문을 여는 제왕의 출현을 예고하는 신령스러운 역할도 말이 담당했다. 천마총 벽화에서 말은 하늘을 날 수 있는 신성한 동물(瑞獸)로 그려졌다. 그래서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신령스런 매개자의 역할도 수행했다. 지상의 말에 날개를 달아 천상을 날게 한 상상은 그리스 신화의 페가수스와도 놀랍게 닮아있다.

고대전쟁에서 말은 장수에겐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기 때문에 말은 영웅 또는 장수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 태조 이성계를 비롯해 몇몇 장수들의 설화에 등장한 말은 화살보다 더 빠른 명마였음에도 이를 몰라본 주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하지만…. 그래서 말이 죽으면 따로 무덤까지 만들어주기도 했다.

비단 권력자 뿐만 아니라 민중들에게도 말은 특별한 존재였다.

민중들의 고통을 해방시켜줄 구세주로 등장하는 아기장수의 전설에서도 말은 구세주의 출현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런가 하면 전국 각지의 서낭당에서 쇠,돌,나무로 말 모양을 만들어 수호신을 삼은 경우를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한국고유의 민속놀이인 윷놀이에서도 말의 위상은 남다르다. 부여족 시절 5부락에 5가지 가축을 나눠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킬 목적에서 비롯된 윷놀이에서 도는 돼지,개는 개,걸은 양,윷은 소를 상징하고 가장 점수가 많은 모는 말을 상징한다.

그러면 말에는 어떤 상징성이 있어 이런 대접을 받았을까. 말은 하늘,태양,남성과 같은 양(陽)의 기운을 대표한다. 경상도에서는 첫 말날을 길일이라 해서 이날 장을 담그면 장맛이 좋다고 한다.

반면 이날에는 우물을 파지 못하게 했는데 이날 우물을 파면 흉사가 생기거나 물이 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기때문이다. 땅은 음에 해당하기 때문에 양기가 성한 날에 땅을 파는 것은 금기였다.

이런 강한 양의 성격 때문에 말띠 여자는 기가 세다는 속설이 한동안 득세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90년 말띠해 출생 성비는 남자 아이가 116.9로 89년 112.1,91년 112.9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 특히 이 때는 말띠 중에서도 기가 가장 강하다는 속설이 있던 백말띠여서 음성적인 태아 감별로 여자 아이를 임신한 경우 중절수술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상의 살인행위도 흔했다는 후문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자유롭고 전진하는 말의 특성처럼 말띠 여자의 진취성이 험한 세상을 헤쳐가는 활력소로 인식돼 말띠 여아 출산에 대한 기피증세가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을 것 같다.

말띠도 여러가지란 점을 밝혀두고 글을 맺는다. 육십갑자 중 말띠에 해당하는 것은 갑오(甲午) 병오(丙午) 무오(戊午) 경오(庚午) 임오(壬午)의 다섯해이다.

갑은 청색,병은 적색,무는 황색,경은 흰색,임은 흑색으로 구분된다 . 따라서 2002년 올해는 흑말띠이고 지난 1990년 경오년은 백마,2014년 갑오년은 청마,2026년 병오년은 적토마,2038년 무오년은 황마가 된다.

이상헌기자 ttong@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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