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서] 아부 그라이브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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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헌률 논설위원   

2003년 4월 이라크의 바그다드가 미·영연합군에 의해 함락되자 바그다드시민들은 아부 그라이브(Abu Ghraib) 교도소로 몰려갔다. 시민들은 후세인 공포정치 아래에서 악명 높았던 이 교도소를 파괴했고 억울하게 붙잡혀 있던 시민들은 풀려나면서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했었다. 두번 다시 이곳에서 잔혹한 고문과 처형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을 기대하면서.

바그다드가 점령된 지 1년이 지난 2004년 5월.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부 그라이브는 예전과 변함없이 공포와 전율 그 자체로 세계인에게 다가왔다. 단지 이라크인들을 고문하고 학대를 하던 주체가 후세인 정권에서 미군으로 바뀐 채로.

지난 1960년 바그다드 서쪽으로 20마일 떨어진 아부 그라이브란 마을에 세워진 이 교도소는 후세인 정권시절 최대 1만5천명이 수감됐으며 지난 84년에는 4천여명의 죄수가 처형돼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았었다. 현재는 미군에 붙잡힌 포로와 일반잡범 등 7천여명이 수감돼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미군에 의해 차마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이라크 포로학대 사실이 미국과 영국의 언론보도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군에 의해 이라크에서 자행되고 있는 아부 그라이브의 비극은 전쟁에 의해 인간성이 얼마나 피폐화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시작하면서 명분으로 내세운 자유·인권·민주주의가 얼마나 허구인가를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점령 이후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하자 '사담 후세인 제거를 통해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실현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미국이 주장하는 이라크인에 대한 자유와 인권 존중의 명분과 가치를 정면으로 부인한 꼴이 됐다.

'야만인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자연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주장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스트라우스(Leo Strauss)를 사상의 기원으로 삼는 공화당 내 신보수주의자인 네오콘(neo-conservatives)들. 딕 체니 부통령,럼즈펠드 국방장관을 비롯한 그들은 정계·언론계를 장악하고 '새로운 국제질서 확립'이란 미국의 강경 대외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대부분이 유대인인 이들의 오만함의 끝자락에서 아부 그라이브의 비극이 터진 것이다.

미군의 이 같은 비인간적인 포로학대는 이라크인과 전세계인들뿐 아니라 미군들의 가족과 양식있는 미국인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명분없는 전쟁이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미국과 미국인들의 전통적인 청교도적인 명예와 양심을 송두리째 멍들이고 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이라크 포로학대 사건이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민간인 500여명을 학살한 미라이(My Lai)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5년간 포로생활을 한 미국 공화당소속 존 매케인 상원의원. 그는 '팔이 부러질 정도의 학대는 받았지만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행위는 당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정부는 하루바삐 진상을 밝히고 아랍권에 사과하고 아부 그라이브를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이젠 미국이 자유와 인권을 말하려면 적어도 매케인 의원의 이 같은 절규는 수용해야 한다. 철저히 진상규명을 하고 관련자 전원을 법정에 세워 처벌하는 등 인권국에 걸맞은 사후처리를 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이라크에서 미군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포로에 대한 비인간적인 학대와 고문에 대해 침묵을 해서는 안된다. 이미 서희·제마부대를 파병을 해두고 추가파병까지 준비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는 우리나라가 유엔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인권위원회의 5번째 연임국이란 대외적인 명성에도 걸맞지 않다.

시민단체들은 미군의 이라크 포로에 대한 가혹행위에 대해 우리 정부의 입장표명뿐 아니라 비도덕적인 전쟁에의 추가파병 결정을 철회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일부 정치권도 가세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한미동맹에 얽매여 이 사건에 침묵하기보다는 '인권중시'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주는 게 우선이다. 아직도 우리 땅에 미군이 주둔해 있고 노근리 학살사건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는 현실에서 아부 그라이브의 비극은 결코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hylee@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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