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문화] 霧散 (안개 무 / 흩어질 산)
안개가 걷히듯 미움과 갈등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跛行(파행)과 遲延(지연),廢棄(폐기) 또는 霧散. 이는 최근 몇 년간 우리가 주요 언론매체를 통해 숱하게도 들어온 말들이다.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는 막중한 법안과 국책사업들이 그렇게 끝없이 漂流(표류)하거나 온갖 우여곡절 끝에 결국 霧散되곤 했다.
어떤 일이든 계획된 대로 추진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일마다 遲延되거나 霧散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계획 자체가 무리한 것이었거나,의견수렴 절차가 잘못되었거나,시기적으로 부적절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霧散이란 안개가 흩어진다는 뜻이다. 춘천의 湖畔(호반)에서 아침을 맞이하다 보면,霧散이 의미하는 바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한 발치 앞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어둠이 사라지듯 거짓말처럼 말끔히 걷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안개가 걷히고 나면 앞이 훤히 트일 뿐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지만,추진하던 일이 霧散되면 치유하기 힘든 후유증이 남기 마련이다. 예산의 낭비는 차치하고 그동안의 사소한 의견차가 점차 상호간의 비난과 증오의 감정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霧의 務는 冒와 통하여 '덮는다'는 뜻이다. 안개가 땅 위를 덮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 말이다. 안개는 대개 아침에 끼는데,그렇게 안개가 끼어있는 아침을 霧朝(무조) 또는 霧曉(무효)라고 한다. 흔히 안개가 자주 끼면 일어날 때 몸이 개운치 않다고들 하는데,옛사람들은 이를 산천이 내뿜는 惡氣(악기)라 해서 霧(장무)라 했다.
안개가 끼게 되면 한 지역을 완전히 뒤덮게 되므로,무엇이 많이 모이는 것을 안개에 빗대기도 한다. 모인다는 뜻의 集(집) 萃(췌) 聚(취) 등과 결합된 단어들인 霧集 霧萃 霧聚 등이 그러하다. 그리고 짙게 낀 안개를 濃霧(농무)라 하고 濃霧로 길이 막히는 것을 霧塞(무색)이라 한다. 濃霧는 김승옥의 소설 [霧津紀行](무진기행) 속의 霧津의 상징성처럼,종종 우리를 헷갈리게 하고 사고를 내게 한다. 그러한 사고를 막기 위해 자동차 운전자가 안개 속에서 안개등을 켜듯 선박에서는 기적을 울리는데,이를 霧笛(무적)이라 한다.
안개가 걷히듯,갈등이 해소되고 의문이 풀리며 미움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으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숱한 難題(난제)들이,지역과 계층,세대간의 갈등들이 안개처럼 말끔히 풀리고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