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문 독창적 미술언어로 화폭에 담다
김성룡 '보이지 않는 신체전'… 25일까지 수가화랑
참, 기묘한 그림들이었다. 볼펜과 유성펜으로 만들어낸 무수한 선의 흔적들, 어둡고 음울하게 보이는 화면 배경, 몽환적인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인물들, 한쪽 팔이 기계인 소녀들. 김성룡(사진)의 그림 안에는 신묘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상상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에서 볼 수 있음 직한 이미지였다.
"화면에 등장하는 소년, 소녀들은 사이버 세계 속 인물입니다. 요즘 많은 청소년이 사이버 세계에 심취하고 있죠. 현실 세계에서는 도덕적 규제, 제도적 억압의 틀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사이버 세계에서는 현실을 망각할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죠."
화면 속 인물들은 사춘기의 일탈행위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성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벌거벗은 소녀의 머리에서 남성의 성기를 닮은 듯한 뿔이 돋아나고, 소년의 어깨 뒤에서는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난꽃이 활짝 피었다. 무의식 속에 내재된 인간의 성적 호기심과 욕망들을 화면 위에 토해 놓았다.
한쪽 팔이 기계인 소녀들은 마치 사이버 여전사로 보였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져 있는 사이보그였다. 가상 시뮬레이션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이미지인데 미래 인간의 모습에 대한 작가적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작가는 "지난 2003년부터 사이버 세계 인물 이미지를 담아 왔는데 앞으로의 작업 방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그림의 갈래는 '숲시리즈'. 인간의 얼굴이 숲으로 덮여 있는 모습인데,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허물어져 있다. 자연 속에서 사람들이 있다가 나왔을 때 자연의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과 잔상이 인간의 신체에 드리운 모습이다. 몽환적으로 보이는 이 작품들 역시 작가의 내면 세계를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가 1990년대 초 부산에서 그룹 '해빙' 활동을 통해 다양한 재료와 매체 활용 등을 시도했고 리얼리즘, 마술적 사실주의, 환상적 초현실주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이에 심취한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끊임없이 내면을 성찰하고 이를 화폭에 옮기는 작업에 지나치게 열중한 결과 그는 최근 2년간 극도의 신경쇠약과 환각에 시달리기도 했다. 비현실적인 상상계에서 현실계로 힘겹게 넘어온 고초를 겪었기 때문일까. 이번 작품들이 한층 더 농밀해 보이는 까닭이다.
그의 작업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고단한 과정이다. 볼펜과 색연필로 무수한 선을 긋고 아크릴 채색을 하는 힘겨운 노동 끝에 작품 한 점이 완성되기에 많은 인내를 요한다.
"한 장의 종이 위에 선을 긋고 호흡을 할 때 보이지 않는 영성의 세계가 화폭 위에서 파동칩니다. 현실과 몽환의 경계를 넘나들며 발견하는 고요함 속의 마성(魔性)을 들여다보는 것이죠."
이영철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는 "김성룡의 독창적인 그림은 삶에 대해 항상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고 패턴화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은 '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룡의 '보이지 않는 신체전'이 25일까지 수가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6년 만의 부산 전시. 2003~2007년 작품 28점. 051-552-4402. 김상훈기자 neato@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