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화장실, '냄새' 벗고 '개성'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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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기념공원 화장실 안 보면 '반쪽 관람'

부산 유엔기념공원의 남자화장실 내부.


'시원하셨습니까?' 혹시라도 신문에서 다른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신문에서 이게 무슨 냄새야…." 죄송하지만 지금부터 냄새나는 이야기이다. 화장실 이야기를

하려니까 아직도 조심스럽다. '뒷간', '측간'이라는 옛날 용어는 사라졌지만 고정관념은

완전히 바뀌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화장실은 달라지고 있었다.

깨끗해진 것은 물론이고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톡톡 튀는 개성과 결합한 감성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런! 화장실에서는 휴지를 써야지, 공연히 화장실에 돈을 쓰는 게 낭비가 아니냐고요?



대한민국 최고 명품 유엔공원에 있다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는 '한국에서 최고로 좋은'이라는 자부심으로 만든 화장실이 있다. 홍익대 환경개발연구원의 디자인으로 APEC을 앞두고 2005년 리모델링한 작품. 이곳 화장실은 전국의 내로라하는 화장실을 답사한 결과 장점만을 모았다. 지난 14일 다시 한 번 유엔기념공원을 들러 보았다. 클래식 음악이 조용히 흐르는 가운데 남자 소변기 앞에는 카펫 같은 신발 받침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측면의 통유리를 통해서는 자연 채광이 들어오고 대나무숲이 시원하게 보였다. 푸른 빛의 대나무 숲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남자 소변기 앞에는 꽃 화분, 그 다음에는 창문, 그 너머에는 다시 꽃 화분의 구조이다. 유엔기념공원답게 '아메리칸 스탠다드(American Standard)'라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대형 좌변기가 설치되어 있다. 일단의 관광객들이 들어온다. 안내를 하는 사람이 "이곳 저곳을 둘러본 뒤 화장실을 꼭 둘러보고 나오세요"라고 이야기한다. "화장실이 되게 좋은 모양이지."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린다.


화장실 NO, 아이디어 뱅크 YES

부산 강서구 송정동 녹산공단에 위치한 리노공업은 요즘 잘 나가는 회사이다. 3D 기피의 대상인 현장 직원으로도 들어오고 싶다는 이력서가 수북이 쌓여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직원 숫자가 200여명에 달하는 이 회사에 화장실이 없다니? 대신 '아이디어 뱅크'가 있다. 화장실을 아이디어 뱅크로 만들어 놓았다. 이 회사 이채윤 대표는 그곳에서 회사 발전을 위해 좋은 아이디어를 내어달라고 그렇게 이름지었다. '아이디어 뱅크'는 특급호텔의 화장실을 벤치마킹해 바닥에 대리석을 깔았고 모든 좌변기에 비데를 설치해 놓았다. 비데가 귀하던 지난 1997년부터 설치했으니 종업원들이 행복해 한 것은 물론이다. 한 외부인사가 이 회사의 '화장실'을 보고서는 여기서 단가를 깎다가는 몰상식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대표는 "직원들에게 잘 해주면 더 많은 것을 얻는다"며 화장실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명품 화장실 경쟁 나선 부산·양산

경남 양산시가 웬만한 아파트보다 비싼 '명품 공중화장실' 건립에 나섰다. 양산시는 다음달에 2억5천만원을 들여 상북면 대석리 홍룡사와 홍룡폭포 입구에 청동과 주철 등의 재료를 이용해 범종 형태의 화장실을 건립한다. 국내 최고급 변기는 물론 인체감지형 음향시설, 미끄럼 방지시설 등을 갖춘 이 화장실은 건축비가 3.3㎡당 1천500만원을 웃돌아 양산지역 신축 아파트의 평균 가격보다 두 배 정도 비싸 논란과 동시에 화제가 되었다. 양산시는 2010년까지 웅상읍 무지개폭포, 원동면 임경대, 상북면 천성산 지푸네골 등 10여곳의 유원지에 특색있는 명품 화장실을 지속적으로 설치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부산시도 지난 14일 보도자료를 내고 시내 곳곳에 품격 높은 공중화장실을 조성하기로 했다. 부산시는 시비 5억원을 투입해 공중화장실 6개소를 신축하고 기존의 13개소는 개축 또는 개보수를 통해 화장실 시설 수준을 개선해나가기로 했다.


홍콩·서울 화장실 구경가요

화장실이 또 다른 날개를 다는 경우도 있다. 화장실이 너무도 유명해져 관광지화 된 곳도 있다. 홍콩 페닌슐라호텔의 스카이라운지 '더 펠릭스(the Felix)'의 화장실이 바로 그렇다. 유명한 건축가 필립스탁이 설계한 곳으로 위트와 유머가 넘친다. 홍콩 앞바다를 훤히 조망하는 28층의 유리창가에서 홍콩의 아름다운 야경을 향해 시원하게 '실례'를 하면 정신적 배설까지 느끼게 해 준다. 어떤 이들은 "그곳에서 볼일을 보면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고까지 말한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서울 W호텔'의 화장실 벽면에는 첨단 디지털 아트가 만들어내는 영상이 펼쳐진다. 화장실 안에서 용변을 보는 행위와 예술을 감상하는 행위가 묘하게 겹쳐져 '용무'가 하나의 퍼포먼스로 어우러진다.


뒷간서 생활의 중심으로

부산에서는 이밖에도 절벽 위에 지어진 용두산공원 화장실, 유리블록의 동래지하철역 화장실이 아름다운 화장실로 꼽히고 있다.

사람들은 왜 아름다운 화장실에 집착하는 걸까? 양산시 환경관리과 안종학 계장은 "화장실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양산시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계속해서 화장실에 대한 눈높이를 높여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다움건축사무소 김명건 소장은 "화장실의 변모는 단순히 생리적 해갈 외에도 정신적 배설까지도 유도한다. 현대판 해우소(解憂所)의 진면모를 느끼게 해 준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또한 "아름답고 품위있는 화장실도 많은 반면에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단지 형태적으로만 개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에 오히려 자연 경관에 융화되지 못하고 기형적인 모습으로 연출되는 부작용도 간혹 있다"고 덧붙였다. 천대받던 숨겨진 뒤쪽의 공간이 생활의 중심으로 새로운 위상을 찾고 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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