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맞서다 스러진 이 불온한 천재를 아시오
저항과 아만 / 박희병
'"추한 종놈 온다! 추한 종놈 온다!"/ 아이들 짱돌 줍고 흙을 던지네./ 내 들으니 참 괴이한 일도 있지/ 길에 떨어진 칼을 주인에게 돌려주다니.'
이언진(1740~1766)의 '호동거실(호동居室)'에 나오는 시다.
무심코한 아이들의 짓이라지만, 명백한 타자에 대한 폭력이다. 추한 종은 그리 멸시를 당하고 살면서도 주인이 길에서 잃어버린 칼을 찾아 돌려준다. 시인이 보기엔 행태가 괴이하단다. 주인의 입장에서야 충직한 노비라 여길 수 있지만 말이다.
"이따거의 쌍도끼를 / 빌려 와 확 부숴 버렸으면
손에 칼을 들고 / 강호의 쾌남들과 결교했으면."
여기서 칼은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첨예한 양상을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어다. 주인의 입장에선 지배의 도구지만, 노비의 입장에선 반역과 항거의 도구이기 때문. 시인은 노비의 무자각성을 답답해하며 그 굴종성에 착잡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영조 시대 요절한 중인 시인 이언진의 시 170수 완역·연구
또 다른 시는 훨씬 더 위험하고 불온하다.
'이따거의 쌍도끼를/ 빌려 와 확 부숴 버렸으면/ 손에 칼을 들고/ 강호의 쾌남들과 결교했으면.'
따거(大哥)는 동년배 이상의 남자에 대한 존칭으로 쓰이는 백화(구어체 언어)이고, 쌍도끼는 수호전의 도적 가운데 흑선풍 이규가 소지한 무기다. 반역을 꿈꾸고 현 체제를 전복시켜 새로운 사회를 수립하고픈 원망이 숨어 있다. 지금 시대라도 과격한 테러리스트로 몰릴 법한 위험한 발상이다. 조선시대에 이런 시인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시들이 쓰여진 시기는 놀랍게도 조선의 문예부흥기라 일컫는 영조 시대. 이 시를 쓴 이언진은 중인 신분의 요절 시인. 스무 살에 역관이 돼 중국과 일본에 다녀왔는데, 그의 문학적 천재성 때문에 일본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역관배 따위가 외국에서 득보하다니, 참으로 말세야'라는 사대부의 개탄 소리를 들어야 했다. 때문에 그는 자각적으로 18세기 사대부 문화의 대척점에 자기를 위치시킨 채 글쓰기를 했던 것.
박희병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쓴 '저항과 아만'(돌베개/1만8천원)은 이언진의 시 170수를 처음 완역하고 치밀한 연구를 더한 호동거실 평설이다.
박 교수는 이언진의 시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고통에 대한 감수성, 죽음에 대한 통찰을 갖고 있지만, 저항과 아만을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봤다. 아만(我慢)은 불교에서 스스로 높은 척하는 교만을 일컫는 말. 그는 병적일 정도로 강한 자의식과 높은 자존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골목길이란 뜻의 '호동'을 자신의 호로 사용할 정도로 계급 인식도 분명했다. 아만은 불가피하게 세상과의 불화를 야기한다. 그는 주자학은 물론이고 유교의 배타적 절대성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했는데, 이는 조선 사회의 시스템과 작동 방식을 근저에서 허무는 작업이었다.
형식적으로도 5언시나 7언시가 일반적이던 당시의 관행을 깨고 의도적으로 6언시를 썼고, 여기다 문어와 백화를 섞어 썼다. 사대부 지배계급과는 다른 언어의식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호동거실은 저항이 빚어낸 미학이다. 하지만 이런 당당함 때문에 그는 요절할 수밖에 없었다.
박 교수는 "이언진 같은 이단아는 조선 시대 역사에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