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손잡고 찾는 '옛날 학생' 보면 뿌듯"
부산대 앞 31년째 영업 해동이발소 이상재 사장
"여태 여기 계셨어요? 이제 요금 좀 올리세요." 부산대 정문 근처 해동이발소 이상재(70) 사장이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이 사장은 부산대 앞에서 가장 오랫동안 한곳에서 영업을 해왔다. 상가 번영회가 최근 상가들의 역사 조사를 하던 중 드러난 사실.
10년 넘게 커트 요금 5천원
건강 허락하는 한 일하고 싶어
그가 이곳에서 이발을 시작한 것은 1979년 2월이었다.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주위는 논과 밭이 대부분. "18살에 이발사 자격증을 따서 서울 을지로와 소공동에서 13년간 이발을 했어. 그러다 집안 어른들이 추운 곳에 있지 말고 내려오라고 성화를 하셔서 지금 이 자리에 가게를 열었지."
돈 없는 학생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일반인보다 싼 1천500원을 받고 커트를 해주었다. ROTC 학군단 등 단체 고객은 500원 깎아 줬다. 이발을 하다 고개를 숙이고 자는 손님이 있으면 깨우지 않고 그 상태에서 머리를 손질해 줄 만큼 섬세하게 배려를 했다. 이런 그의 정성이 입소문을 탔는지 80년대 중반에는 하루 100명도 넘는 손님들이 찾았다.
그때가 해동이발소의 전성기였다. 대학 앞서 시위가 많을 때라 고생도 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위 때 가게를 열어 가게 물건들이 부서지기도 했다. 최루탄 냄새 때문에 랩으로 얼굴을 감싸고, 아예 며칠씩 문을 닫아야 할 때도 있었다. 시위하다 학생들이 도망쳐 오면 숨겨 주기도 여러 번. "내막은 잘 모르지만 어린 학생들이 잡혀가면 고생하잖아."
그러다 '퇴폐' 이발소가 성행하자 이발소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고, 경기도 예전만 못하면서 급격히 손님이 줄기 시작했다. "요즘 학생들은 여자 친구 따라서 미용실에 많이 가잖아. 같이 왔다가도 여자 친구가 다른 곳에 가자고 하면 나가더라고."
젊은 학생들도 더러 찾지만 고객 대부분은 주변 상인들이나 교직원들. 퇴임 후 일부러 찾아오는 교수가 있는가 하면 옛날 학생 때의 추억 때문에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이 나이가 들어 가정을 이루고 자기 자리에서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면 내 자식처럼 반갑고 뿌듯하지."
보람과 추억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요즘은 장사가 너무 안 돼서 걱정이다. 심하면 하루에 한 명의 고객만 찾을 때도 있다. 주위에서 함께 영업하던 7~8개의 이발소가 문을 닫았다. 커트 요금 5천 원은 10년도 넘게 제자리다.
"3개월 전에 우리 집 위에 미용실이 생겼는데, 장사가 잘 되는지 애가 쓰여. 우리 가게 뿐 아니라 상가들 전체가 장사가 잘 됐으면 좋겠어." 50년 넘게 이발을 해 온 '장전동 이발사'는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