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보다 현세 긍정하고픈 한국의 '복'
복에 관한 담론 / 최정호
별 생각 없이 쓰는 말 중에 행복이란 게 있는데, 이게 참 가당찮은 말이다. 복(福)이면 됐지, 다행스런(幸) 복이라니! 이기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함께 있어 행복해!', '아, 행복하다!' 따위의 용법을 보면 행복은 주관적인 개념이다. '나'를 위한 것이고 '나'만 느끼는 것이다. '행복하시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때의 행복도 기본적으로 '말하는 사람'과는 무관하다. 바라기는 하지만 '나'가 어찌 해 줄 수 없는 문제다. 순전히 주관적이다.
복은 다르다. '아, 복해!' 이런 말은 없다. '복하냐?' 그런 말도 없다. 대신 '복 받으세요'라고 한다. 받는다는 건 누군가 준다는 걸 전제로 한다. 누가 줄까? '나'일 수도, '우리'일 수도 있다. 또 하느님, 부처님일 수도 있다. 준다는 건 위하는 것이다. 복은 또 실천의 문제다. '복을 짓는다'고 한다. 짓는 것은 행위다. 가만히 앉아서 바라기만 하는 게 아니다. 무언가 해야 한다.
한민족 복, 노골적 세속적 성격
이면엔 삶에 대한 적극성 추구
남과 나눌 수 있을 때 참된 복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는 오랜 기간 복에 관한 연구를 거듭했다. 6·25전쟁 때 복이 뭔가 진지하게 생각했다는데 "복을 비는 마음이 한국 사람들의 삶을 밑바닥에서 움직이고 있는 기본 동기요, 한국 문화의 본바탕이 아닌가 느꼈다"고 한다. 그 오랜 시간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 '복에 관한 담론'이다. 전문용어로 하자면 '기복사상과 한국의 기층문화'를 탐구한 책이다.
복이라고 뭉뚱그려 말했지만, 전통적으로 한국 사람에게 복은 수(壽)·부(富)·귀(貴)·다남자(多男子), 4가지다. 오래 살고, 돈 많이 벌고, 높은 벼슬하고, 자식 많이 두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세속적인' 것들이지만, 최 교수의 시선은 그 표상 너머 깊은 곳에 닿아 있다.
목숨이란 일고 지는 바다의 잔물결처럼 흔하고 헤픈 것인지도 모른다. 무상하고 허망할 터인데 우리나라 옛사람들은 그리 여기지 않았다. 이승에서 오래오래 사는 것을 바랐다. 최 교수는 복 사상은 추한 목숨의 연장이 아니라 현세를 긍정하고 삶의 적극성을 추구한 것으로 본다. 춘향전에 나오는 '백발가'가 그렇다. '천금준마 잡아타고/ 장안대로 달리고저/ 만고강산 좋은 경개/ 다시 한번 보고지고/ 절대가인 곁에 두고/ 백반교태 놀고지고….' 비록 늙어 귀 멀고 눈 어둡지만, 영생 따위 헛된 꿈을 바란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제대로 살 수 있기를 노래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달랐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중 한 구절.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일단 태어났으면/ 되도록 빨리 왔던 곳으로 가는 것이/ 그 다음으로 가장 좋은 일이라오.' 차안이 아니라 피안을 긍정한 노래다.
마찬가지로 부(富) 사상도 '좋은 것은 빠짐없이 두루 망라하겠다'는 적극적 삶의 표현에 다름 아니며, 귀(貴) 사상은 단순히 벼슬 개념이 아니라 인격적 차원의 사람됨, 마음가짐의 고귀함 등 현실적 삶의 가치 문제에까지 연결된다고 최 교수는 밝힌다. 다남사상은 독특한데 "당대의 복이 다음 대의 복으로, 세대를 이어가는 것"으로 수·부·귀의 복이 현세에서 대를 이어 계속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기복(祈福)은 그처럼 나와 내 가족이 현세에서 잘됨을 바라는 것이다. 그 바람은 남과도 나눌 수 있는 것이어서 좋다. 요즘 사람들은 복 대신 행복이란 말을 자주 쓰지만 왠지 가볍다. 최 교수도 그러한가 보다. "행복이란 말에는 어딘지 개화풍의, 청춘문화의, 아스팔트의 냄새가 난다. 그에 비해 복이란 말에는 할머니네의, 안방의, 된장국의 냄새가 난다"고 한 걸 보면. 최정호 지음/돌베개/268쪽/1만2천원.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