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없는 병원 밥' 알고보니 최고의 '약'
병원식을 통해 본 건강식
'병원 밥은 맛이 없다?' 한 번쯤 입원을 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병원에서 제공되는 밥은 왜 맛이 없을까? 간단히 생각해도 밥을 잘 먹어야 금방 병이 나을텐데 말이다. 부산지역 대학병원의 환자식단을 책임지고 있는 영양사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병원 밥은 단순한 식사라기 보다 '약'이라고 말한다. 대체 그 맛 없는 병원 밥에 어떤 건강 비결이 들어있는 걸까?
건강식이란 제 때, 골고루, 적절히 먹는 식사를 말한다. 하루 총 섭취열량은 개인의 체중과 활동량 등에 따라 다르지만, 필요열량의 55~60%는 탄수화물, 15~20%는 단백질, 20~25%는 지방이 차지하도록 골고루 배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사진은 동아대병원 영양팀이 제안한 하루 건강식단이다. 아침은 토스트, 계란후라이, 양상추샐러드, 우유로 비교적 가볍게 먹고 점심은 쌀밥, 불고기, 꽁치구이, 콩나물국, 오이생채, 깍두기, 사과로 구성해 식이섬유소와 비타민, 무기질에 포인트를 뒀다. 저녁은 콩밥, 동태찌개, 닭가슴살볶음, 풋고추조림, 배추김치, 수박으로 양질의 단백질군을 보충했다. 동아대병원 제공
# 맛 없는 병원식을 위한 변명
우선 병원식은 집에서 먹는 식사나 밖에서 사먹는 음식과는 다른 개념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철저히 입원 환자 개인의 질병치료를 위해 처방받아 준비되는 식사이기 때문이다. 병원 영양사들은 그것이 단순한 밥이 아니라 치료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병원식은 단순 식사 아니라 '치료'
밥을 기본으로 다양한 영양 섭취
햄 어묵 등 염분 많은 음식 피해야
채소 과일 먹고 자연식 위주로
병원식은 일반식과 치료식으로 구분된다. 일반식은 식품의 종류와 영양성분, 조리방법, 질감 등을 특별히 제한하지 않는 식사로, 환자에게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하는데 목적을 둔다. 반면 치료식은 환자의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개인의 질환과 정도에 따라서 식품의 종류, 영양성분, 조리방법, 질감 등을 철저히 조절하는 식사다. 만성신부전, 골수이식, 복막투석, 당뇨병, 위암 후 절제 등 질환과 상황에 맞게 각기 다른 식사관리 지침이 마련돼 있다.
입원환자의 식사는 담당주치의의 식사처방 지침서에 근거해서 이뤄진다. 환자에 대한 진료 뒤 전산으로 식사처방이 영양팀에 전달되고, 영양사는 이에 근거해 식단을 짜는 것이다.
이처럼 처방받아 제공되는 식사가 대학병원 기준으로 한끼에 700~800식. 대량의 음식을 조리한 후 각각의 식기에 상차림한 뒤 각 병동으로 운반하는데 대략 2시간이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음식은 수분이 증발하고 온기가 날아가 식어버린다. 특히 치료식의 경우는 환자 개인의 영양치료 기준에 맞게 식사가 제공돼야 하므로 상차림 과정에서 시간이 더 걸린다.
변명은 여기서부터다. 같은 음식이라도 적정온도가 유지될 때 입에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갓 지은 밥의 맛과 향을 떠올려보면 쉽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차림 때 보온·보냉고를 사용하고, 중형자동차 한 대 가격에 육박하는 보온·보냉 배선카트를 이동에 사용하지만 온도 관리는 쉽지 않다.
또다른 이유는 식사를 제공받는 환자들의 상태에 있다. 질병으로 인해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고 운동량이 부족한 탓에 환자들의 식욕이 뚝 떨어져있다. 신진대사에 크게 영향이 없는 정형외과 환자나 신경정신과 환자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더불어 병원식의 메뉴 자체도 환자가 직접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식욕을 떨어뜨린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일부 선택식을 제공하고 있지만 점심 한끼, 비빔밥 등의 일품요리 형태라는 제한이 있어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마지막으로 음식. 병원식은 당분, 염분, 지방이 적고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식단 원칙을 견지한다. 과다한 당분, 염분, 지방은 대부분의 질환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 병원식이 권하는 건강 식사 가이드
병원 영양사들이 가장 강조한 것은 균형 잡힌 영양섭취. 한 가지 식품만 먹거나 또는 피하거나, 혹은 유기농 식품만 고집한다고 해서 건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균형 잡힌 영양섭취를 통해 평소 꾸준히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질병이 쉽게 공격하지 못한다.
균형 잡힌 영양섭취란, 주식인 밥을 기본으로 매끼마다 동물성 단백질 반찬 1~2종류, 다양한 야채류 2종류, 우유와 과일 1~2조각 정도를 먹는 것이다. 조금 더해 항암 효과가 있는 마늘, 버섯, 토마토 등의 야채류를 다양하게 먹는다면 금상첨화다.
그리고 싱겁게 먹어야 한다. 짜게 먹는 것은 암을 비롯해 고혈압, 심장 질환 등의 발생률을 높인다. 따라서 되도록 짜게 절인 장아찌나 젓갈, 김치의 반복적인 섭취는 피하고, 그 외에 염분 함량이 높은 대표적인 음식인 칼국수와 멸치볶음, 햄, 어묵 등의 가공식품은 피해야 한다. 특히 달콤하면서 매운 음식은 대체로 짜고, 여러 맛이 어우러지면 짠맛에 대한 감각을 약화시키게 되므로 소금을 적게 먹기 위해서는 덜 맵고 덜 달게 요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병원식에서 가장 보기 힘든 식품이 햄, 어묵, 젓갈, 장아찌라고 영양사들은 입을 모았다.
다음은 화학조미료. 단맛·짠맛·신맛·쓴맛의 4개 기본 맛에 속하지 않는 감칠맛을 내는 합성 또는 인공감미료로, 병원에서는 이 대신 천연조미료를 만들어 사용한다. 버섯이나 멸치, 다시마, 북어, 들깨 등을 갈거나 우려내서 조리에 첨가한다. 이같은 천연조미료 역시 재료의 염분이 음식을 짜게 할 수 있으므로 손질 때 미리 씻어 염분을 최대한 제거한 뒤 말려서 분쇄기 등으로 갈아 쓴다.
또다른 식단 원칙은 채소와 과일을 매일 먹는 것이다. 과채류는 비타민과 무기질, 섬유소의 공급원이므로 하루 400g 이상 챙겨 먹으면 좋다. 비타민이나 무기질은 보충제로 섭취하는 것보다 신선한 식품 그 자체를 먹는 것이 건강 효과가 높고, 빨강 노랑 초록 보라 하양 등 여러가지 색의 채소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
이밖에도 가급적 소박하게, 자연식으로 식사할 것을 권한다. 암을 비롯해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표준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름, 소금, 설탕, 버터 등으로 과하게 조리한 음식은 피하고, 소박하고 신선한 음식을 좋아하도록 미각을 훈련하면서 그 양에 적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끓이는 것보다는 굽거나 찌는 것이, 튀기는 것보다는 재빨리 데치는 것이 건강한 조리법이다. 볶을 경우에는 기름을 약간만 두르고 센 불에서 살짝 볶고, 양념은 가열할 때 넣지 말고 음식을 먹을 때 조금씩 찍어먹는 것이 좋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도움말=부산대병원 이정숙·동아대병원 장세리
부산백병원 이경란 영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