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그때 그 늬우스] 청와대(靑瓦臺)로 개명(改名)
<이승만(李承晩) 독재정권의 상징이었던 경무대(景武臺)가 청와대(靑瓦臺)로 개칭됐다. 대통령비서실에서는 三十일 대통령 공관인 현 경무대(景武臺)는 이조 때부터 내려온 명칭이지만 이(李) 독재정권시에 十二년간 저지른 폭정에 의하여 백성의 원한이 사무치도록 뿌리박혀 있는 이름이므로 청와대(靑瓦臺)로 개칭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날 윤(尹) 대통령은 관저 명칭을 청와대(靑瓦臺)로 바꾸는데 대해 담화를 발표하고 『청기와는 우리 문화재와도 관계가 깊으며 평화스러운 이름이다』라고 말했다. - 1960년 12월 31일>
1960년 12월 30일 윤보선 대통령은 대통령 관저 이름을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바꾼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후 8개월 만의 일이다. 경무대란 이름에서 이승만 독재정권의 폭정과 부정부패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져 국민의 원성을 샀기 때문이란 게 이유였다. 청와대란 이름을 지은 사람은 당시 서울시사 편찬위원장이었던 김영상씨라고 한다. 김씨는 윤 대통령의 의뢰를 받고 화령대(和寧대)와 청와대 두 이름을 제안했는데, 고고학을 전공한 윤 대통령은 '푸른 기와집'을 뜻하는 청와대가 우리 고유 문화를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청와대를 선택했다고 한다.
본래 경무대 자리는 고려시대 남경의 별궁터였다. 이 별궁터는 조선시대에 경복궁의 후원으로 이용되다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과 함께 소실되어 방치되었다. 그 뒤 고종 5년(1868년)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후원 자리에 네 개의 건물이 지어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경무대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경무대를 비롯한 경복궁 후원 건물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총독관저를 지어 사용했으며, 해방 후에는 미 군정장관 하지 중장이 총독관저를 자신의 관저로 이용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 관저로 사용하면서 경무대란 옛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990년 청와대 관저 신축공사 도중 공사장 바로 뒤 바위에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표석이 발견된 바 있다. 감정 결과 300~400년 전 것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에게 그곳이 정말 복된 땅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일설에 따르면 총독관저 자리를 알아보던 조선 풍수사들이 일부러 용맥에서 약간 벗어난 위치에 터를 잡아주었다고도 한다. 정광용 기자 ky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