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317> 안동 천지갑산
옅은 안개 속 '한반도' 신비로운 자태, 황홀하다는 말밖에…
흔히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경북 안동은 북서쪽으로 백두대간의 문수지맥과 용암지맥이 버티고, 남동쪽은 낙동정맥의 갈라지맥, 덕산지맥, 영동지맥이 둘러싸고 있다. 산세는 화려하고 오밀조밀하지만, 1,000m급 이상의 산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지맥에 앉은 산들마저 순한 육산이다 보니 '이렇다 할 만한' 대표 산이 없다. 이런 밋밋한 평에 어깃장을 들이대는 산이 안동 천지갑산(462m)이다. 천지갑의 '갑(甲)'자는 10간의 첫 번째.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사이 산 중에서 갑의 자리를 차지하는 최고의 산'쯤 되겠다.
막상 천지갑산이라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정작 이 산은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이름은 없고 봉우리 높이만 표시돼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지도에도 천지갑산은 보이지 않는다.
'천지 간 최고' 지칭하는 이름
쉬면서 가도 4시간이면 넉넉
462m 높이에 7개 봉우리
통일신라 모전석탑도 볼거리
꾼들만 아는 산일까? 여름 산행이 시작되는 6월 말이면 본보 등산가이드 난에 천지갑산 코스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매주 이 산만 가는 산악회가 있을 정도다. 낮은 산이지만 골산·육산 산행을 압축한데다,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한반도 모양의 물돌이가 가히 환상적이다. 산행팀도 진작부터 이 산을 주목해 왔다.
천지갑산 산행은 충분히 쉬면서 올라도 산행시간이 4시간이 안 된다. 대안으로 주변의 연점산(871m)과 연결한 코스가 있다. 하지만 들머리와 날머리가 멀리 떨어진데다, 대중교통도 불편하다. 또 산행시간만 7시간을 넘다 보니 부산에서 출발한다면 당일 산행지로 부적합하다. 거기에다 연점산~716봉~천지갑산을 잇는 등산로가 여름철에 잡풀, 잡목으로 우거져 길이 사라지다시피 해 산꾼들도 여름에는 이 코스를 피한다.
산행팀은 길안면 주민센터와 송사1리 마을 주민들의 안내를 받아 원점회귀가 가능한 코스로 꾸며봤다. 4.2㎞를 3시간 30분 정도에 걷는 산행을 끝내고 길안천에서 천렵을 즐길 수 있는 시간도 계산에 넣었다. 산 자체는 비탈의 연속이지만 초등학생 정도라면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 가족 산행지로도 무리가 없겠다.
산행기점은 길안면 송사1리 마을 정자다. 60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가 정자를 넉넉하게 덮고 있다. 송사1교 아래로 길안천이 흐른다. 하천 길이 72㎞로 낙동강으로 흐르는 지류이다. 간밤에 내린 비로 물살이 빠르고 유량도 풍부했다.
다리를 건너면 천지갑산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서 지난달 30일 제2회 천지갑산 산악축제가 열렸다. 이 축제는 안동시가 천지갑산을 널리 알리려고 기획한 것이다. 주민과 산악인 1천여 명이 모였다. 그만큼 안동 사람한테 천지갑산이 주는 의미가 각별하다는 뜻이겠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가다 보면 천지갑산 5, 6봉의 기암이 기세 좋게 등장한다. 잿빛 바위가 층층으로 쌓여 마치 배추 속살처럼 하늘을 향해 서 있다. 그 아래로 길안천이 반시계 방향으로 날래게 돌아나간다. 산행 출발지점에서 이런 장관을 대하다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잠시 뒤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6봉 방향, 오른쪽이 1봉 쪽이다. 디지털 안동문화대전에는 '송제마을에서 이 산을 보면 평소 선비가 쓰는 관(冠)처럼 봉우리가 서 있다. 사람들이 '제2의 금강'이라고 칭송하며 예전엔 관악봉으로 불렀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다 약 60년 전 길송분교 초대 교사인 김두원 씨가 더 좋은 이름을 지으려고 마을 어른들과 상의해 천지갑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산 이름을 개명한 것인데, 산꾼들이 끊이지 않으니 개명이 성공한 셈이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틀자마자 곧장 비탈길이다. 숲이 우거져 길이 어둑선하다. 오전부터 는개가 내려 길마저 축축하다. 고도가 걸음을 뗄 때마다 툭툭 올라간다. 산행팀 일행 중 한 명이 "길이 턱에 닿을 것 같다"고 엄살이다. '얕은 산'이라고 얕보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겠다. 험한 가풀막의 연속이다.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오른다. 이정표를 지나 25분 정도 비탈길과 싸운다. 길이 사나운 곳에 밧줄이 달렸다. 하지만 물기가 있어서 미끄럽다.
1봉은 등산로에서 약간 왼쪽으로 비켜서 있다. 파란색 플라스틱 패널에 '천지갑산 1봉'이라고 새겨져 있다. 맨 처음 만나는 봉우리이지만 조망은 좋지 않다. 5분 정도 떨어진 2봉으로 이동한다. 길은 아까보다 순하다. 는개가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산행팀은 카메라와 GPS를 방수 팩에 넣었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이지만 사위는 늦은 저녁 무렵인 양 어둡다.
2봉을 나와 천지갑산 정상 방향 이정표를 보고 진행한다. 한 3분가량 걸었을까. 절벽 쪽으로 발을 디뎠는데 조망이 괜찮은 전망대가 나온다. 천용사 부근의 한반도 닮은 지형을 길안천이 태극 모양으로 감싸고 돈다. 구름과 안개에 가려 신비스럽다. 안동 하회마을, 강원 영월군의 수태극, 홍천군 금학산의 물돌이에 견줘도 손색이 없는 형승이다. 꼼꼼히 지형을 뜯어본다. 동쪽은 숲이 우거졌고, 서쪽은 논과 밭이다. 동고서저의 한반도 실제 지세를 닮았다. 휴전선일까? 한반도 모양의 땅 가운데로 지방도로도 지나간다. 아쉽게도 독도와 제주도가 없다.
전망대에서 나와 5분 거리에 3봉이 있다. 3봉을 지나 5분쯤 더 가면 천지갑산 정상인 4봉이다. 표석과 벤치가 있다. 특이하게 송제마을을 바라보는 낡은 무덤 1기가 있다. 여기서는 물돌이가 안 보인다. 대신 갈라지맥의 대표산인 황학산(782m)이 멀리 보이고, 자연휴양림으로 유명한 계명산(530m), 금학산(576m)의 산줄기가 뚜렷하다. 정상에서 길은 세 갈래로 나뉜다. 우측(동남쪽)은 연점산 방향이고, 좌측(동북쪽)이 내려가는 방향이다.
정상에서 15분 정도 내려오면 5봉이다. 5봉부터는 짤막한 암봉의 연속이다. 기암마다 족히 100년은 넘은 노송들이 자란다. 5봉에서 보면 한반도 지형이 소나무에 반쯤 가려 있다. 전망대에서 실컷 구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처손과 각종 양치식물이 바위틈을 메웠다.
15분 남짓 더 내려오면 6봉에 도착한다. 여기에 서면 건너편으로 2봉의 날카로운 암벽들이 보인다. 6봉에서 3분쯤 내려오면 잘록한 지점에 암봉이 나타난다. 천지갑산 7봉으로 불리는 곳인데, 일부 주민과 산꾼은 천지갑산의 제대로 된 봉우리는 6개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5분 정도 밑으로 더 내려가면 개활지에 석탑이 서 있다.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경북 문화재자료 제70호인 대사동 모전석탑이다. 자연 암반에 세웠는데, 상층 기단과 지붕돌만 남았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 갑사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절에 빈대가 많았다. 승려 두 명이 빈대를 잡으려고 불을 놓다가 절을 태워 먹고 줄행랑쳤다고 한다. '빈대 잡다 절을 태운 격'이다.
모전석탑에서 다시 하산 길을 연다. 마지막 전망대는 탑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천지갑산 절벽 아래로 난 돌 길을 따라 10여 분 더 가면 산행 초입에서 만났던 갈림길이 다시 나온다. 갈림길에서 정자까지 10분 정도 걸린다. 산행문의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산행대장 010-3740-9323.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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