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우리 시대의 마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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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만들기가 대세다. 재개발, 뉴타운, 재생, 르네상스, 창조도시를 거쳐 마을 만들기는 대학원 동기를 부시장으로 만들었단다. 나 역시 산복도로 르네상스 마스터플랜 수립과 이런저런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요즘은 아예 마을 만들기를 위한 도시대학을 동료와 모의 중이다. 그러면서도 마음엔 늘 자괴감이 든다. 내가 이런 걸 할 자격이 있나?

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고, 윗집 아이들이 뛸 때마다 우리 집에 인터폰으로 항의하는 아랫집 아저씨에게는 다소의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같은 동에 사는 동료 건축가나 선거 때 내 손을 잡고 인사하던 시의원은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하고 물론 왕래해본 적도 없다. 누군가가 그리우면 인터넷이나 전화를 부유하다 번화가에서 친구를 만나고 늦은 밤 돌아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들에는 낯선 시선을 건넨다. 나는 도시에 살지, 마을에 살고 있지 않다.

그런 내가 마을 만들기에 관심을 두는 것은 신기하지만, 곰곰이 되물어보면 그저 지적 호기심이나 직업적 의무감만은 아닌 것 같다. 내 속 깊은 어딘가에 이웃이 모두 친구였던 어린 시절의 즐거운 추억이 있고, 마음을 같이하는 공동체와 이상적인 동네를 만들어 그 속에서 함께 늙어가자던 약속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래서 이 동네 저 동네를 기웃거림이 좋고, 부러워한다. 지금은 멀리 있지만 언젠가 돌아갈 본향, 그 온전한 향유를 향해 내 마음속에 있는 위대한 혼자의 자리에 오래된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함께함의 소중함을 깨달아가고, 하나씩 욕심을 내려놓으며 너무 늦기 전에 나의 마을로 돌아가기를 기회주의적으로 꿈꾸고 있다.

김승남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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