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헌재와 대우그룹, 평가는 역사의 몫
/ 이정희 서울경제팀장
전직 대우그룹 임직원들의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22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김우중 회장을 비롯한 대우 전직 임직원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우 창립 45주년 기념과 '대우는 왜?' 출판을 기념하는 행사를 겸해 가졌다. 김 회장은 지난 2009년 42주년 행사 이후 계속해서 창립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이른바 '대우사태'는 세계경영의 기치 아래 앞만 보고 가던 중에 발생한 '외생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발생한 '시대의 아픔'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의 행보는 늘 화제를 몰고 다녔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2년 6개월간 금융감독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을 겸직한 후 재경부 장관으로 영전한 그는 항상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퇴출' '워크아웃' '야생마(재벌) 길들이기' '대우 저승사자' 등 숱한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구조조정의 전도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요즘 그는 모 일간지에 연재하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위기를 쏘다'를 통해 외환위기 이후의 구조조정 막후 비사를 밝혀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서고 있다. 그의 글대로라면 그 자신이 없었으면 한국경제와 금융시장은 붕괴되고, 재벌 개혁은 힘들었던 것으로 나온다. 특히 대우 구조조정과 관련, 재벌개혁에 정치권이 간여하게 되면 '딜'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다 은행을 통한 기업구조조정을 진행했으며 대우는 시장의 신뢰를 잃어 해체됐다고 밝히고 있다.
대우그룹은 IMF 외환위기와 경영층의 무모한 사업 확충, 사업 확장을 위한 과도한 차입 경영 등으로 망했다는 것이 그 당시 분석이다. 1999년 12월 실사 결과 대우의 총부채는 최대 89조 원, 자산은 59조 원으로 추산됐다. 당시 '인류 역사상 최대 파산'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시대적 정황으로 볼 때 대우그룹을 해체하고 김우중 회장을 파멸로 몬 것은 한국의 금융과 주식을 장악하여 한국을 경제 식민지로 만들려는 국제금융세력과 이 세력에 동참했던 한국의 정계, 금융계, 관계, 학계 인사들이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대우사태를 재조명하는 전문가들은 대우의 약점은 과도한 차입이라는 점을 인정을 하지만 분식회계, 공적자금 투입, 해외자금 도피, 사기대출 등은 대우를 죽이기 위해 잠시 적용시킨 구실이었다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필리핀 대학의 왈든 벨로가 지적한 "한국 같은 경제적 식민지의 경제 관료들은 안락한 대접을 조건으로 국제금융세력에 국가를 팔아넘기는 식의 행태를 저지르는 것이다"에서처럼 대우의 현금유동성이 어려워졌던 것은 국제금융세력과 이에 예속된 DJ정부의 공동 작업이었다는 지적이다.
국제금융세력은 국내 금융기관들을 통하여 김영삼 정권 시절에 한국기업들에게 과도하게 달러를 빌려 쓰도록 부추겨서, 결국 외환위기를 조장하여 한국의 재벌과 은행들을 약탈했다는 것이다.지금의 재경 관료나 금융기관, 전직 대우그룹 임직원들 상당수도 당시의 대우그룹 구조조정 방식이 '명쾌하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오죽했으며 고위 관료 중 한 사람은 "역사는 승자의 편"이라는 말까지 할 정도다. 당시 금융위원장이던 이 전 장관이 사용한 시스템은 선진국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말하던 것이었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국제투자은행, 컨설팅회사, 국제기구 등에 적극적인 자문을 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세계 금융위기를 겪고 난 현재의 시점에서 이 전 장관이 그렇게 칭찬했던 시스템을 제공해 주던 국제투자은행, 신용평가기관들은 금융위기의 전범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보면 당시 세계경영으로 선진국 기업들에게 위협을 가하던 대우그룹은 이 전 장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이들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전 장관이 그렇게 부실하다고 칼을 들이댔던 대우그룹 계열사들 상당수는 현재 잘나가는 기업들이 된 것은 물론 채권은행들이 보유한 대우 채권·주식 등은 투입된 공적자금 규모를 상회하고 있는 중이다.
만약 정부와 정책당국자가 국가 경제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대우그룹에 대해 좀 더 애정을 갖고 구조조정에 나섰다면 지금처럼 몸사리는 기업과 잠재성장률 저하, 그리고 고용 없는 성장시대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ljn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