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 장편소설 '유랑자' "영혼의 성장엔 수많은 生이 필요하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정찬 소설가는 "한 인간이 무수한 삶을 사는 것은 완전한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 구도의 유랑"이라고 했다. 정종회 기자 jjh@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왜 나는 이 세상에 육신을 갖고 태어났는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탄생은 왜 있으며, 죽음은 왜 있는가?'

존재의 근원을 묻는 이 질문에 대해 정찬 소설가는 해법의 하나로 '환생사상'을 제시했다.

"인간의 생애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이죠. 환생사상은 동양은 물론 서양에도 있었어요. 고대 그리스 수학자·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영혼불멸의 사상에 기초해 환생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했어요. 환생사상은 육체가 성장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영혼의 성장에도 수많은 생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환생 소재 2천 년 시공간 넘나들며

참된 삶을 묻는 철학·종교 판타지



정찬은 8년 만에 낸 장편소설 '유랑자(문학동네)'에서 '환생'이란 키워드를 내세웠다. 인간이란 필연적으로 여러 생을 사는 존재들이다. 한 존재 속에 수많은 생애와 우주적 형상이 깃들어 있다. 인간이란 무수한 생의 굴레를 도는 유랑자들인 셈이다.

작가의 상상력과 구성력도 눈에 띄지만, 철학적 아포리즘으로 빛나는 문장이 흡인력 있다. 인간 존재에 대해 근원적 물음을 던지는 작가의 사유가 웅숭깊다. 내년에 등단 30년을 맞는 작가는 동의대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있다.

소설은 전생과 현생이 교차하면서 2천 년 시공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소설에는 크게 세 가지의 유랑이 나온다. 2천 년 전 예수와 사도들의 유랑, 1천 년 전 십자군 전쟁 당시 사제와 기록관의 유랑, 현재 제 목숨의 뿌리를 더듬는 한 혼혈아의 유랑이 나온다. 작가는 2천 년 역사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무속신앙을 가로지르며 환상이란 형이상학적 소재를 철학적, 종교적 판타지로 승화시켰다.

소설 주인공은 폴란드계 유대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미국인 전쟁 전문 기자 케이. 그는 2003년 이라크 전쟁 취재 중 아랍인 청년 이브라힘을 만난다. 이브라힘은 미군 공습으로 치명적 상처를 입었지만 "나는…죽지…않는…존재입니다"라고 말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브라힘의 증언. 1천 년 전 십자군 전쟁 때 이브라힘은 전생의 케이와 만났다고 한다. 케이는 십자군의 사제였고, 이브라힘은 적국인 이집트 총독의 기록관이었다. 이브라힘은 2천 년 전에는 예수와 결혼했던 여인이라고 말한다. 1천 년 전 사제와 기록관은 예수의 행적을 좇으면서 둘 중 누구의 예수가 진정한 예수인지를 가리고자 한다. 사제가 떠받드는 예수는 종교적 상징이었고, 기록관이 말하는 예수는 인간적 예수였다. 예수관의 충돌로 인해 사제는 기록관을 롱기누스의 창(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창)으로 찔러 죽인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다시 2003년으로 돌아온다. 이브라힘은 케이를 위해 기도하며 전생의 업보를 용서한다. "당신이 나를 죽인 것은 과거의 행위지만, 동시에 현재의 행위이자 미래의 행위입니다. 당신이 나를 죽인 순간 이미 그것은 당신의 존재 속으로 파고들어, 당신 존재의 일부가 되어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당신의 생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물질이 곧 신이 돼 버린 자본주의 사회에서 환상을 소재로 어떻게 참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며 "인간의 황폐한 욕망 추구는 삶과 죽음을 분리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했다. 그는 "한 인간이 무수한 삶을 사는 것은 단순하고 덧없는 유랑이 아니라 완전한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 구도의 유랑"임을 힘주어 말했다. '현세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명징해 보인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