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부용회(芙蓉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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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규모 결혼이주 여성의 원조는 '부용회(芙蓉會)' 할머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으로 건너왔거나 광복 이후 한국인 남편을 따라 바다를 건너온 일본인 여성들 가운데 귀국하지 않고 한국에 머문 재한일본인부인회 모임이 부용회다. 사랑은 국적을 초월하고 시련을 견디게 한다지만 한·일 결혼의 벽은 높고 험난했다.

1960년도 어느 날의 부산일보를 보면 '국제파혼에 우는 일녀(日女)들'이란 제하의 기사가 나온다. 해방 이후 15년 동안 파혼에 울며 외무부 부산출장소를 찾아온 일본 여인이 800명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들은 왜 귀환선을 타고 한국 땅을 떠나야 했을까? 반일 감정이 극심하던 때라 시댁 식구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구박과 멸시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남편과 가족에게 내쫓기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궁핍한 생활을 참아내기 어려웠을 것은 뻔한 일이다. 지금의 다문화가정 여성들 중에도 이 같은 고초를 겪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반일 감정 대신 '못사는 나라 여성'이라는 차별과 냉대의 꼬리표가 붙은 게 달라졌을 뿐이다. 국제화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1964년 설립된 부용회 부산본부에는 현재 20여 명이 가입해 있다고 한다. 이 모임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쿠니타 후사코 할머니의 99세 백수(白壽)를 축하하는 조촐한 행사가 지난 15일 열렸다. 할머니는 성공적으로 정착한 다문화가정 1세대로 볼 수 있다. 증손자까지 4대에 걸친 가족들이 한·일 양국을 오가며 교류하고 있다. 국적 문제 등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힘겹게 여생을 보내는 회원들도 있다고 한다. 남편 한 사람만을 의지해 국제결혼을 선택한 다문화가정 여성들의 용기있는 사랑을 우리 사회가 지켜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제는 그들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배려가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백태현 논설위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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