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인+간)] 원조 국민 여동생 탁구여제 현정화
46년 만에… 46일 동안… 땀으로 물든 '한반도기' '아리랑'이 울려퍼지는 순간, 우린 '통일 코리아'였다
남북단일팀 당시 리분희의 방을 찾아 `인증샷`을 찍었다. |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을 이끌고 시상대 정상에 오른 남북단일팀. |
당시 우승의 주역, 현정화에게 '영화'가 찾아왔다. "2년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데, 영화사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코리아'의 김지운 감독과 제작자가 남북단일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제가 따졌죠. '왜 이제야 오셨느냐'고. 그때 태릉선수촌 근처 참치집에서 소주를 마셨는데 감독은 도망가고 제작자는 쓰러지고…."
리분희 역을 맡은 배두나에게 기본자세를 알려주고 있다. |
현정화는 기분이 좋았다. 핸드볼, 스키점프처럼 스포츠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속속 등장했지만, 탁구가 없었던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주인공이었고 무엇보다 극적이었던 91년 남북단일팀 이야기를 들고 영화인들이 제발로 찾아왔으니 덩실덩실 춤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원과 배두나 두 명의 주연배우에게 3개월 동안 탁구를 가르쳤다. 그림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작용했다. 대충 하긴 싫었다. 무리한 운동에 배우들이 퍽퍽 쓰러졌다. 기분 좋으면 소주 3병도 받아넘기는 현정화는 술자리를 만들어 "그 정도 열정이면 할 수 있어"라고 배우들을 다독거렸다. "처음에는 배우들이 '감독님' 하고 부르더니 나중에는 '언니'라고 하데요." 현재 흥행몰이 중인 영화 '코리아'는 그렇게 탄생했다.
자신으로 분한 하지원에게 주특기인 전진속공을 전수했다. |
현정화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올림픽에서 단식과 복식 동메달을 땄지만, 눈길을 주는 이가 없었다.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공항을 빠져나왔다. 국민들은 현정화가 금메달을 딸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스물세 살 어린 나이였지만 탁구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라켓을 놓고 고향 부산에서 쉬었다. 가슴 한구석엔 구멍이 난 듯 허전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시 태릉으로 돌아왔지만 그즈음 몸에 이상 신호가 켜졌다. "고기만 먹으면 체하는 거예요. 응급실에도 몇 번 실려갔었죠. 의사 선생님께서 식단을 바꿔보라고 하더군요. 92년부터 94년 은퇴할 때까지 2년 동안 '풀'만 먹고 운동했어요."
그런 몸 상태에서 출전한 1993년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 현정화는 단식 준결승에서 루마니아의 오틸리아 바데스쿠에게 기적적인 역전승을 뽑아냈다. 결승에서는 전진속공이 살아나 서울올림픽 단식 금메달리스트 천징에게 3-0 완승을 거뒀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단식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세계선수권대회 그랜드슬램(단식·복식·혼합복식·단체전)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가 됐다. 지난해 11월 국제탁구연맹은 현정화를 '명예의 전당'에 올려 이 '탁구 여제'를 세계에 공인했다.
■ 10년간 비밀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
세계 정상을 밟은 현정화는 1994년 3월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그의 인기는 요즘 '피겨 퀸' 김연아 못지않았지만 미련 없이 정상에서 내려왔다. 공부하고 싶어 경성대 유아교육과에 진학했다. "어머니가 운동하는 걸 싫어했어요. 나중에 먹고살려면 아이들이라도 가르치라며 체육과 대신 유아교육과를 권유했어요." 내친김에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경희대 체육대학원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그런 그에게 핑크빛 사랑이 찾아왔다. 현정화의 피앙세는 전북 익산이 고향인 탁구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김석만(42) 씨.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파트너로 처음 만나 몰래 사랑을 키워갔다. 10년간 비밀 연애한 끝에 1998년 4월 둘은 웨딩마치를 울렸다. 동갑내기로 알려졌지만, 남편이 한 살 연하다. 탁구로 인연을 맺은 이 영·호남 커풀 사이에선 서연(11)과 원준(9)이 생겼다. 현정화는 자식들에게 운동을 물려주지 않았다. "어릴 때 탁구를 가르쳤지만, 지금은 접었어요. 제가 걸어온 선수 생활이 힘들어 아이들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중단시킨 거죠."
딸만 셋인 현 씨 집안에 둘째인 그는 일찌감치 혼자가 된 부산의 친정 엄마를 모시고 산다. "2001년 첫아이를 낳을 때 엄마가 부산에서 올라와 산후조리를 해 줬는데, 그때 제가 함께 살자고 손을 잡았죠. 제가 일 때문에 밖으로 돌아다니는 바람에 아이들은 엄마가 키웠죠."
비 오는 날 우산을 쓴 그는 별명 `피노키오`처럼 여전히 예뻤다. 박희만 기자 phman@ |
현정화는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한시도 탁구를 잊은 적이 없다. 은퇴 이후 한국마사회 탁구팀 코치와 감독, 그리고 국가대표팀 코치와 감독을 맡으며 녹색 테이블 주변을 떠나지 않은 '영원한 현역'이다. 지난해 1월 대한탁구협회 최연소-최초의 여자 전무이사를 맡으며 이번엔 체육 행정가로도 변신했다. 특유의 마당발 행보가 이어졌다. 내년 6월 부산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를 유치했다. 대회 유치 이후 1991년 남북 단일팀을 떠올리며 북한팀을 초청하기로 했다. "지난달 통일부를 통해 초청장을 북한에 보냈어요. 장관께서도 흔쾌히 도와주신다고 약속했고요."
현정화에게 부산은 어떤 곳일까. "외국에 갔다가 김해공항에 도착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밀면, 광어회, 돼지국밥을 정말 좋아해요. 나이가 들면 부산에 내려와 아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치며 보내고 싶어요." 오랜 시간 고향을 떠나 있었지만, 여전히 '부산의 딸'이었다.
그런 그에게 "다시 태어나도 탁구를 할 것이냐"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안 할 것 같아요." 선수 시절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다시 라켓을 잡고 싶은 마음은 없어 보였다. "대신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제 성격상 사업을 해 여성 CEO가 되고 싶어요." 김호일 선임기자 tokm@busan.com
약력
1969년 10월 6일 부산 동구 좌천동에서 현진호-김말순 씨의 3자매 중 둘째로 출생 대신초-계성중-계성여상-경성대 유아교육과-고려대 교육대학원(석사)-경희대 체육대학원(박사과정 수료) 1979년 수정초등 3년 탁구 입문 남편 김석만(42)과 딸 서연(11), 아들 원준(9)
1985년 고1 때 국가대표 선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단체전 우승
1987년 뉴델리 세계탁구선수권 대회 복식 우승
1988년 서울 올림픽 복식 우승
1989년 도르트문트 세계탁구 선수권대회 혼합복식 우승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복식 우승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대회 단체우승(남북단일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단·복식 동메달
1993년 예테보리 세계탁구 선수권대회 단식 우승
1994년 3월 은퇴
1998년 4월 결혼
1999년 한국마사회 탁구단 코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탁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5년 코리아오픈대회 탁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탁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7년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탁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8년 대한탁구협회 홍보이사
2009년 1월~2011년 3월 여자탁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1년 2월~ 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
2011년 11월 국제탁구연맹 명예의 전당 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