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산책] 역사 속의 파생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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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철학자 탈레스도 선물 거래

이번 주부터 독자들의 파생상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투자를 돕기 위해 파생상품을 알기 쉽게 독자들에게 설명해주는 '파생상품 산책'을 신설합니다. 기존 '증시이슈'와 교대로 격주에 한 차례씩 게재될 예정입니다.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연구센터 전문연구원들이 다소 난해한 파생상품을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서술할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기대 바랍니다.

파생상품의 기원을 말할 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의 이야기가 거론되곤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의하면 탈레스는 철학이 무용한 학문이라고 수근대는 사람들이 못마땅해 철학자들도 원한다면 물질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이기로 했다고 합니다.

별자리를 보고 다음해 올리브의 풍년을 예측한 이 고대 철학자는 올리브 기름을 짜는 압착기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얼마간의 선금을 주는 대신 정해진 가격에 압착기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소유주들로부터 확보했습니다.

예상대로 올리브가 풍작을 이루고 엄청난 양의 올리브를 가공하기 위해 농부들은 압착기를 구해 나섰습니다. 그러나 압착기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은 이미 탈레스가 모두 독점해놓은 상태였지요. 결국 탈레스는 소유주에게 지불한 금액보다 훨씬 높은 값에 압착기를 대여해 엄청난 이익을 거뒀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옵션 매입거래로 대규모의 투자수익을 거둔 셈이지요.

보다 간단한 형태의 거래를 더 살펴볼까요? 12세기 무렵 유럽에서는 무역거래에 따른 운송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다 위험이 수반됐기 때문에 샘플만 보고 물품을 나중에 인도하기로 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계약을 맺으면서 미래에 물품과 대금을 주고 받기로 약속하는 선물계약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종류의 거래 형태는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다양한 문헌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확 전에 미리 농작물을 사고 파는 밭떼기 거래가 옛날부터 있었으며, 관심을 갖고 연구해본다면 먼 옛날 파생상품의 원리를 이용한 우리 조상의 생활의 지혜도 얼마든지 더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 언급한 거래들에 공통적으로 담겨져 있는 파생상품의 속성은 미리 정해놓은 가격으로 미래에 무언가를 교환하기로 하는 약속에서 출발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약속이나 계약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업체의 수출입계약으로부터 일상적인 부동산계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 속에 파생상품의 속성이 녹아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계약조건을 당대 탈레스의 수준만큼 기발하게 설정해놓는 경우는 흔하지 않겠지만요. 결국 파생상품의 기본원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만큼 우리 생활과 동떨어져 있지도 않고, 개념만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면 생각만큼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성민 /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연구센터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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