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가 전쟁 원인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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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둘러싼 역사적 사건 추적

스파이스 / 잭 터너

유럽인들은 왜 그렇게 향신료에 집착했을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현대인의 눈으로 단순히 음식재료의 하나일 뿐인 향신료 때문에 목숨을 건 항해에 나서고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도 불사한 유럽의 대항해시대는 도무지 이해 불가한 일 아닌가.

'향신료에 매혹된 사람들이 만든 욕망의 역사'란 부제가 붙은 '스파이스'의 저자 잭 터너 역시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성서나 고대 문학, 의학서, 요리서, 탐험가 항해일지 등 수많은 역사적 기록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비슷한 물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답을 내놓는다.

"맛은 향신료의 수많은 매력 중 한 가지일 따름이다"라고.

이 책은 향신료를 설명하는 해설서이면서 동시에 역사서이다. 터너는 유럽인이 갖는 향신료의 이미지를 찾아 향신료 열풍이 불었던 근대 초기뿐 아니라 수세기, 수천 년의 역사를 더듬는다. 일차적으로 향신료를 추적하지만, 그의 최종 관심사는 향신료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가이다.

스파이스 / 잭 터너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식의 책들은 이미 많다. 수많은 이야기꾼이 하나의 사물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찾아내 독자에게 내밀며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 책 역시 향신료라는 키워드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추적한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다시 읽어내려는 시도까지 한다는 데에 있다.

터너에 따르면 향신료의 역사적 지위는 절대 단순하지 않다. 향신료를 다룬 역사 기록은 대부분 정치나 경제적인 시각으로 서술돼 있지만, 터너는 성서나 고대 문학, 의학서, 요리서, 탐험가의 항해일지 등을 찾아 헤맨 끝에 인간 본성과 연결한다.

"인간의 감각 마음 가슴이 향신료를 필요로 했고 기호와 믿음이라는 베일에 가려진 영역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영웅적 서사나 잔혹함, 탐욕이 담긴 전쟁이나 항해 같은 역사적 행위들이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에 담긴 향신료를 향한 감정 느낌 인상 태도에서 싹을 틔웠을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근대 향신료 열풍은 경제적 정치적 목적이 컸다. 소금에 절여 짜거나, 상한 고기를 먹던 중세 유럽인들에게 향신료는 매력적이었다. 향신료는 곧 돈이었다. 근대 유럽 항해사들의 눈은 떼돈을 벌어줄 열대 아시아로 향했고,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는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향신료의 역사는 더 오래됐고 유럽인의 머릿속에 향신료는 더욱 중요하고 의미가 깊었다. 근대까지는 향신료에 대한 관념이 현대보다 훨씬 다양했다. 향신료는 음식재료를 넘어 약재이며 종교적 상징물이자 성적 환상이었다. 향신료는 신을 부르거나 악마를 내쫓고 병을 몰아내거나 전염병을 예방하고 사그라지는 성욕에 불을 지피는 상징물이었다. 그들에게 단순한 음식재료를 넘어선 '영혼의 조미료'였던 셈이다. 이런 욕망과 함께 혐오도 공존했다. 맛과 과시욕, 건강, 정력 따위를 돕는 매력을 지녔지만 반대로 허영, 사치, 탐식, 성욕 같은 죄악으로도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그 향신료가 나는 땅은 꿈의 땅이자 파라다이스였다. 그래서 유럽은 수천 년간 향신료에 대한 욕구를 키웠고 수많은 유럽인이 꿈을, 돈을 좇아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하고, 심지어 새로운 대륙도 찾을 수 있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비롯한 다양한 역사적 사건에 향신료가 빠지지 않았음을 기록으로 확인시킨 후 "향신료는 유럽과 더 넓은 세계가 접촉하는 촉매제였고 유럽이 세계 주도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됐다"는 주장으로 이어가는 터너의 얘기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향신료에 얽힌 환상과 꿈, 매력은 미스터리가 풀리며 사라졌다. 탐험가들이 향신료 산지를 더 가깝게 만들었고 산지도 확산되면서 어느새 향신료에 담긴 신비하고 주술적인 이미지는 사라졌고 매력도 잃어갔다. 그럼에도 향신료의 역사는 현대까지도 그 매력을 유지하게 할 만큼 깊다. 스파이스 채널, 스파이스 컬스, 코카콜라 맛 등등으로. 잭 터너 지음/정서진 옮김/따비/592쪽/2만 5천 원.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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