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뉴스] 여성해기사 인터뷰 / 조소현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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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해기사 채용과 승진 복지에 더 큰 관심있어야"

아르헨티나에서

조소현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 1급 항해사 면허를 가진 충청도 태안 출신의 그녀는 1999년 해양대 졸업과 동시에 승선했다. 8년 동안의 승선을 통해 다양한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등을 탔다. 적게는 수만 톤에서 11만 톤짜리 광석 운반선을 몰면서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그녀가 7만5천 톤짜리 당진행 석탄운반선을 끝으로 상선 승선을 마감하고 대학원의 문을 두드려 다시금 책을 잡았다. 이에 대해서 “승선의 경험을 통해 좀 더 전문적인 해양인력이 되고자 했던 마음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함이었다”고 단순하게 설명했다. 이후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요원으로 선발된 그는 스웨덴의 세계해사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해기사를 전문적으로 양성해내는 길목에 서서 후배들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해당 경력을 치면 14년이 넘는 그녀다.

제복 입은 모습을 상상했으나 흰색 블라우스에 검정색 치마, 단품 목걸이로 액센트를 준 구릿빛 피부에 활달한 모습의 아가씨.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해기사의 길에 들어섰을까? “요즘은 인터넷 등으로 승선을 위한 정보나 학교에 대한 정보 등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제가 해양대에 지원할 당시만 해도 별로 정보가 많지 않던 때라 무턱대고 찾아간 경우였어요. 학비가 들지 않고 해양과 관련, 취업을 쉽게할 수 있다는 등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문을 두드렸답니다.” 싱거운 대답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덜커덕 합격한 해양대학은 녹록하지 않았다.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기간 군사훈련에 버금하는 적응 훈련을 거치면서 “‘내가 왜 여기에 왔나?’하는 후회에다가 갈등과 반항도 했다”고 밝힌다. 얼마나 바다를 모르고 무관심했던지 적응 훈련기에 부르는 ‘해양가’의 가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집은 배란다”라는 구절을 “왜 나의 집이 베란다지?” 하곤 고개를 갸우뚱했던 “다소 띨띨했고,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녀. 소탈한 성격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런 그가 지금 선원을 양성하는 교수의 자리에 와 있으니 같이 동문수학한 동기들은 이구동성으로 “꼴통인 네가 어떻게 일을 견뎠느냐”며 참 아이러니 하단다.

해기사가 되기 위한 꿈이 허술한 채로 입학한 대가는 중간에 방황과 학업성적도 신통찮게 나오는 등 혹독하게 치렀다. 그러나 일단 해기사로 취업을 하고 주어진 과정에서 차근차근 실력을 쌓으면서 일을 익히다보니 “어! 별거 아니잖아”라는 감으로 되돌아왔고 막연한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었다. “나도 할수 있네”라는 자각이 들면서 본격적인 뱃사람이 되었다. 이후론 남자들에 처지지 않기 위해서 오히려 더 열심히 업무에 매달렸다.

“일하는데 차이요? 전혀 없습니다. 때로는 화물 점검, 선창 손상유무 확인, 선창 소재 등의 이유로 수십미터 높이의 선창을 하루에도 몇 번씩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내리곤 합니다. 남성해기사들과 똑같이 당직 서고 휴식 취하고 하루 3교대로 8시간 일하는 것은 다를 바 없어요.” 배에서는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악바리처럼 이를 앙다물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녀는 “해기사야 말로 남녀가 똑같이 업무를 볼 수 있는 훌륭한 직업”이라고 설명한다. 잠시 보여준 손 때 묻은 선원수첩엔 각국의 입출국 도장이 즐비, 그녀의 만만치 않은 캐리어를 말한다.

선원 수첩
여성해기사이니 그래도 다르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있지요. 거주와 위생 구역도 남성들과 달리 독실이고 방안에도 2중 잠금 장치를 꼭 하곤 합니다. 2중 잠금장치가 습관이 되어서 하선하거나 휴가 때에도 저절로 문고리를 걸어 가족들이 매번 문을 두드려야하는 에피소드도 겪었지요.” 거기다가 남성사관들의 방에 용무가 있어 들를 경우엔 반드시 ‘오픈도어’를 유지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위서를 요구하는 캡틴도 있었다. 과잉보호도 거추장스럽긴 마찬가지다. 3항사 시절엔 밤 12시까지 당직을 서면 반드시 그녀가 숙소 방문을 잠그는 것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드는 배려가 차고 넘치는 선장도 만났다.

그러나 배에서는 언제나 외로웠다. 국적선을 탈 때면 남자 선원들 가운데 늘 홍일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배들이나 다른 나라 배들에는 여성해기사들이 복수로 승선한 경우도 꽤 있다. 심지어는 여성 선장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배들은 열이면 열 척, 여성해기사는 언제나 1명이었다. 선내에서 말동무 할 여성동료가 없는 게 제일 힘들었다. 남자 동료들과도 어울림도 한계가 있었다. 모든 선원들의 주목받는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승선하자마자 터진 사고에 “여자가 배를 타더니”하는 따가운 시선도 견뎌내어야 했다. 성적인 조롱도 없지 않았다. 성격이 워낙 괄괄해서 대개 웃고 넘기지만 참 어이가 없는 일도 당하기도 했다. 한번은 멕시코에 들렀을 때였는데 3등 항해사를 호출하는 소리에 갔더니 한 외국인 선원이 그녀 앞에서 옷을 훌러덩 벗는 고의적인 쇼도 부렸다.

그래도 그녀는 이런 난관들을 거침없이 타개하고 넘었다. 거의 8년 가까이 배를 타면서 1항사까지 진급도 남에게 뒤지지 않고 해냈다. 여성으로 1항사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도 국내에서는 여성 1항사는 다섯 손을 꼽을 정도다. 거양해운과 한진해운을 거쳤고 그대로 배를 타면 나중에 선장자리라고 못할 게 없을 그녀였다.

거침없는 그녀의 도전은 한국해양연수원의 교수가 된 지금도 계속된다. “요즘엔 여성해기사의 해상진출을 위한 국제기구의 역량강화와 전략개발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그녀는 여성해기사의 진출과 관련된 논문을 국제해사기구(IMO) 등 국제사회에 잇달아 발표했다. 여성해기사의 채용과 승진 보호제도와 복지, 선내 거주 구역 등에 대한 그녀의 제안은 바하마 파나마 등 여러 회원국들로부터 큰 지지도 받았다. 이에 대해 IMO에서는 내년 3월 부산서 열리는 IMO주관 여성해기사 국제 컨퍼런스의 한국 측 컨설턴트를 그녀에게 맡기는 것으로 화답했다.

조소현 교수
“해기사 세계에 여성들의 도전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선발된 한해원 해기사 과정엔 150명 중 2명이 여자에요. 아시다시피 남자가 많은 교육과정이지만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여성 해기사들이 조금씩 늘어날 것입니다. 여성해기사에 도전해보세요.”        
SEA&강승철기자ds5b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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