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십니까] 김기춘 전 법무장관
"이제 사회와 가족 위해 봉사하는 삶 살아야죠"
문득 누군가의 소식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조언을 듣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진실된 속내를 알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부산일보가 근황이 궁금한 우리들의 이웃을 직접 찾아갑니다. 멘토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지역 사회의 원로와 리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출향 인사, 화제의 인물 등이 걸어온 진솔한 인생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드리겠습니다.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지나치면 사고를 치게 돼 있다.
"공익재단 이사장 맡아
부산과 서울 오가며
어려운 이웃 돕고 있지"
"요즘 '직업윤리"가 많이 떨어졌어
다른 분야는 몰라도
판·검사는 절대 그러면 안돼"
김기춘 전 법무장관 만큼 '권력'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흔히 요직이란 요직은 다 거쳤다. 잘 나가는 검사였고, 중앙정보부에서 파견근무도 해봤고, '검찰의 꽃'이라고 하는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지냈으며, 3선 국회의원에 대한야구위원회(KBO) 총재도 역임했다. 남들이 한번 하기도 힘든 자리를 그는 두루 해봤다.
그런데도 그는 힘자랑을 안 한다. "겸손하다" "항상 친절하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대한민국 원로'를 대표한다고 말한다.
지난 5일 서울 광화문 변호사 사무실은 찾았을 때 그는 없었다. 직원 2명이 조그만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좀처럼 약속을 어기지 않는 그였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부산에 행사가 있어 갔는데 비행기가 연착된다고 했다. 10분쯤 뒤 그가 들어왔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부산에 무슨 일이신지.
"내가 BN그룹에서 운영하는 '시원공익재단' 이사장이다. 시원재단은 불우한 어린이나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장학사업을 한다. 오늘 조의제 회장 만나 재단에 대한 지원을 더 늘려달라고 부탁했다. 조 회장도 흔쾌히 수락했다."
-다른 봉사활동도 하고 계신걸로 아는데요.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지. 우리나라에 에너지 빈곤층이 120만 가구나 돼. 그들에게 연탄과 난방유를 공급하고 미납 전기료를 내줘. 부산에선 밥 굶는 사람들 돕고, 여기(서울)선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셈이지."(웃음)
그의 말은 계속됐다. "국회에 있을때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겸 재일동포법적지위 위원장을 오래했다. 지금은 한일친선협회 중앙회 부회장이다. 재단법인 한국기원 부회장도 맡고 있다. 내가 국회에서 바둑이 대한체육회에 포함되도록 해줬다고 부회장 하라네. 근데 난 바둑이 8급밖에 안돼."
-그 많은 일을 하려면 웬만한 체력으론 힘들텐데요.
"건강은 걱정없어. 1975년부터 서울 평창동 산허리 동네에 살고 있는데 매일 아침에 산에 왔다갔다 했지. 지금은 체육관에 가서 30~40분 걸어. 난 저녁을 적게 먹어. 그래서 체중을 62㎏으로 일정하게 유지하지. 그 대신 점심은 가리지 않고 잘 먹지."
-어떤 검사였습니까.
"나 스스로 치밀하고 엄격한 검사였다고 자부해. 지도자는 실력이 먼저 있어야 해. 그래야 부하들을 압도하지. 도덕성도 필요해. 정치도 마찬가지야. 그래야 국민들이 믿고 따르지."
그에게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성추문 검사나 떡값 검사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는 거침없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통탄할 일이야. 우리가 젊은 검사일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 검찰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직업윤리'가 많이 떨어졌어. 다른 분야의 직업윤리가 다 떨어져도 판·검사는 절대 안돼. 앞으로도 판·검사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해."
그에게 평생 맡았던 직책 중 가장 재미있는 자리가 뭐였냐고 물었다. 주저없이 "KBO총재"라고 했다. 다소 의외였지만 그 이유가 있었다.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당시 해태 구단주는 선동열을 일본으로 보내는 걸 반대했고 선동열은 강력하게 희망했다. 그래서 KBO 총재인 김 전 장관이 해태 구단주를 설득해 선동열을 일본으로 보냈다. 지금도 선동열은 김 전 장관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한다고 한다.
화제를 바꿔 박정희 대통령과의 관계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육영수 여사 살해범 문세광 얘기를 꺼냈다.
문세광 사건 조사 당시 김기춘 나이 34세. 처음엔 기가 찼다. 날고 긴다는 중정 요원들이 24시간 수사해도 입을 열지 않은 문세광을 어떻게 수사한단 말인가.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했던가. 그해 8월4일 김기춘은 대천해수욕장으로 휴가를 가서 영국 기자출신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소설 '자칼의 날'을 읽었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을 소설화한 것이다. 자칼은 청부살인자의 암호명이다. 그 속에 총을 분해해서 공항을 통과하거나 변장하고 여권을 위변조하는 내용이 다 나온다. 그래서 김기춘은 다짜고짜 "문세광, 너 '자칼의 날' 읽었지"라고 묻는다. 김기춘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문세광은 얼떨결에 "예. 선생도 읽었습니까"라고 답한다. 김기춘은 "그러면 너도 사나이답게 당당하게 답해라"고 다그친다. 그때부터 문세광은 육 여사 암살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새누리당 고문격인 원로들의 모임인 '7인회'가 최근 언론에 나온 적이 있어 실체와 역할에 대해 물어봤다. 7인회는 김기춘·최병렬·김용갑·김용환·현경대 전 의원 등 박근혜 대통령을 오랫동안 도와온 원로 멤버들이다. 일각에선 총리와 장관, 청와대 수석들의 인선에 이들이 역할을 했다는 얘기도 나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이 잘되길 바라는 원로들이 모였다. 단순 친목모임이다. 언젠가 언론에 우리 모임에 대해 한번 나오고 난뒤 그 뒤론 전체모임은 안한다." 그리곤 "우리의 역할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것으로 끝났다. 다만 박 대통령이 우리 사회 원로들의 경험과 경륜을 많이 참고하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지금 약간 과도기를 겪고 있지만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는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아들은 의사이고 첫째 사위는 변호사로 있으며 둘째 사위는 대통령직인수위 고용복지분과 위원으로 활동한 안상훈 서울대 교수이다.
그는 47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을 국가를 위해 봉사한 셈이다. 요즘은 가족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원로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권기택 기자 ktk@busan.com
김기춘이 걸어온 길
1939년 경남 거제 장목면 시방리서 태어났다
1958년 경남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입학한다
1960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다
1968년 부산지검 검사가 된다
1981년 법무부 검찰국장을 맡는다
1986년 대구고검장에 임명된다
1988년 검찰총장이 된다
1991년 법무부장관에 오른다
1995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에 취임한다
1996년 처음 배지를 달다(3선)
2003년 국회 법사위원장이 된다
2004년 한일의원연맹 부회장을 맡는다
2005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이 된다
2005년 시원공익재단 이사장에 취임한다
2009년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도 맡게된다
2012년 새누리당 상임고문이 된다.
그는 홍조근정훈장·보국훈장·황조근정훈장·청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