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날 삼킬 듯 하던 파도가 이제는 뒤에서 밀어주는 것 같아요"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마도로스에서 해상 전문 변호사 변신 조묘진 씨

전직 해기사 출신으로 지난달 부산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법무법인 청해에 근무하고 있는 조묘진 씨가 "국내 해상산업발전에 도움이 되는 해상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종회 기자 jjh@

10년 전 그녀는 마도로스였다. 외항선 항해사로 세계 곳곳을 누볐다. 그러다 3년 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생으로 변신했다. 졸업 후 이제는 해상 전문 변호사로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해상 전문 법무법인이자 해외에서도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청해'(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에 특별채용돼 지난달 초부터 근무하고 있는 부산대 로스쿨 출신의 조묘진(33·여) 씨.

상당수 로스쿨 졸업생들이 6개월간의 의무 인턴 자리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지만 그녀는 일찌감치 지난해 취업을 확정했다. 전직 해기사로서의 전문성과 우수한 로스쿨 성적을 두루 인정받은 것이다.

"해기사로 일 했던 경험과 로스쿨에서 공부한 학문을 해상사고와 해상보험 사건으로 접하니까 또 새롭고 무척 재미있어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지만 하루하루 배워나가는 것이 늘 즐거워요."

한국해양대 입학 바다와 인연
외항선 항해사로 첫 사회생활
5대양 6대주 누비며 산 경험
로스쿨 입학 3년내내 공부만
해상산업 발전 도움주고 싶어

■바다와의 인연

경북 포항 세명고 출신인 조 씨의 바다와의 본격적인 인연은 1998년 한국해양대 운항시스템공학부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조 씨는 "고 3 때 친구가 해양대에 응시한다기에 나도 부모님께 부담을 주기 싫어 큰 고민없이 국립대인 해양대에 같이 지원했다"면서 "꼬마 때는 파도가 나를 삼킬 것 같이 느껴져 바다가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 평생 바다와 함께 하는 삶을 하게 됐다"고 웃었다.

별 고민없이 입학한 대학생활은 처음엔 그녀에게 지옥과 같았다. 점호·구보에 각종 훈련까지, 군대와 같은 학교생활이 힘들어 자퇴를 두 번이나 고민할 정도였다.

그래도 '한 번 맺은 인연, 끝까지 해보자'란 오기로 학업에 매진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후 한진해운 외항선 항해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여성에게 항해사란 직업도 결코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었다. 벌크선의 경우 정박 중에는 2교대 근무로 잠이 부족한데다 신경 쓸 것도 많았다.

"배가 운항중일 때는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어요. 특히 달빛도 없는 한 밤 중에 새까만 목선이라도 다가올 경우는 아찔하죠. 갑자기 나타난 어선을 피하기 위해 우리 배를 360도 회전시키기도 하고요. 또 서해 바다를 지날 때는 무수히 많이 떠 있는 중국 어선들을 피하느라 땀을 빼기도 했고요. 미국에서 한국으로 올 때는 저기압이 형성된 곳을 세 번이나 지나 배가 뒤로 밀리는 바람에 예정된 날짜보다 일주일가량 운항이 지연되기도 했죠. 하역할 때도 한 번에 많은 물량을 내리면 배가 자칫 두동강 날 수도 있어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았어요."

물론 바다와 함께하는 생활이 좋은 점도 많았다. 고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과 배를 따라다니는 귀여운 돌고래 떼는 그녀에게 위안이 됐고,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직접 체험한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됐다.

"한 번은 인도 캘커타에서 콩을 하역하는데 제가 선원들을 지휘하니까, 현지 사람들이 무척이나 신기한 듯 쳐다보다라고요. 인도 남자에게 선물도 받았죠."

그녀는 그렇게 울고 웃으며 4년을 항해사로 일했다. 
한진해운 항해사로 근무하던 2004년 인도에서 하역 작업을 감독하고 있는 조묘진 씨.
■말로만 듣던 로스쿨

배에서 내린 후에는 학교로 돌아갔다. 지난 2007년부터 한국해양대 마린시뮬레이션센터와 운항훈련원 조교(7급)로 근무했다. 재학생들에게 항해사 업무 이론과 실습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러다 언론에서 로스쿨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딴 세상일로만 치부했는데, 조 씨의 학구적인 면모와 성실함을 높이 산 학교 교수들과 선배들이 '해기사 출신으로서 해상 분야 전문 변호사는 어떠냐, 한 번 응시해보라'고 자꾸 권유했다.

'한 번 해 볼까'란 고민은 2008년 9월 실행으로 옮겨졌다. 경북 경주 부모님 댁으로 짐을 싸고 가 공부에 매진했다. 토익과 법학적성시험(LEET) 등 로스쿨 시험 과목을 독학으로 모질게 공부해 1년 만에 부산대 로스쿨에 합격했다. 부산대를 선택한 것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상분야를 특성화 한 로스쿨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 3월 로스쿨 2기로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자 그녀는 또 다른 난관에 부딪쳤다.

"입학 후 처음 헌법 수업을 듣는 데 마치 외계어를 듣는 것 같았어요. 교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입학했지만 처음 접하는 법학 수업에 충격을 받아 절박함이 더해졌다. 이후 그녀는 3년 내내 학교를 거의 벗어나질 않았다. 3년 내내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간단히 운동한 후 자정까지 '기숙사-강의실 -도서관'만 다니며 공부에만 전념했다.

"처음엔 법을 공부하면 용어가 낯설어 다른 교재 2~3권씩을 펴 놓고 공부할 정도였어요. 그러나 법대 출신이 아니라서 공부를 못한다는 말이 듣기 싫어 외출도 거의 안하고 독하게 공부했어요."

■병아리 변호사

성실함은 금세 결과로 나타났다. 1학년 때부터 상위원을 유지했던 성적은 졸업할 때는 상위 10%로 올라 있었고, 일찌감치 해상 전문 법무법인의 표적이 됐던 것이다.

올해 졸업한 로스쿨생들은 지난 1월 변호사 시험을 치르고 다음달 있을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조 씨는 이 시험에 합격하면 정식으로 변호사로 일하게 된다.

법무법인 청해의 유일한 항해사 출신의 조 씨는 아직 정식으로 변호사로 입문하기 전인데도 선배 변호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청해 이정훈 변호사는 "조 씨는 책에서 알 수 없는 항해나 선박 실무에 관한 것을 잘 알아 선배 변호사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면서 "해상 사건을 특화한 우리 법인에게 딱 맞는 인재를 채용했다"고 조 씨를 치켜세웠다.

조 씨는 "아직 정식으로 변호사가 되기 전이라 조심스럽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배워서 많은 해상 사건의 해결에 기여해 나아가 국내 해상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해상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