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안희제 서거 70년… 광복회, 차남 결혼식 사진·임종기록 공개
"못난 아비 만나 고생 많았다" 냉철했던 백산, 그도 아버지였다
여기, 한 장의 결혼식 기념사진이 있다.
훤칠한 외모의 신랑 왼편에 자리 잡은 신사는 주례를 맡은 고루 이극로 박사다. 조선어학회 핵심 멤버였으며 훗날 완성된 '우리말 큰사전' 집필 물꼬를 틔운 대표적인 한글학자다. 이 박사의 옆에 나란히 선 이는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한 한뫼 안호상 선생. 이날의 주인공인 신부는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초대 편집국장을 지낸 만능언론인 하몽 이상협 선생의 막내 처제다.
이처럼 쟁쟁한 주례와 하객이 1934년 서울 소공동 부민회관에 모였다. 신랑은 부산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의 차남 안상훈 씨였다. 왼쪽 네 번째로 자리를 잡은 백산 선생은 금테 안경을 끼고 나비넥타이로 멋을 냈다.
일제 감시 속 '항일 자금줄'
평소 사진 촬영 꺼렸지만
아들 결혼식만은 예외
만주 형무소서 모진 옥고
이 들끓는 수의 입고 병보석
임종 직전 장남에 가내 안부
광복회 부산지부가 백산 안희제 선생의 서거 70주년을 맞아 이달 미공개 자료 2점을 일반에 공개했다. 앞에서 소개한 차남의 결혼식 사진과 선생의 임종을 지켜본 의사 안영제 씨의 기록이다.
결혼식 당시 백산 선생은 중구 중앙동에 있던 백산상회를 정리하고 서울로 몸을 옮긴 이후였다. 백산상회를 독립운동 자금의 루트로 줄곧 의심해오던 일본의 탄압이 날로 심해졌기 때문이다.
백산 선생의 손자인 광복회 안경하 부산지부장은 "할아버지는 사진 촬영을 하실 때마다 가장자리나 뒤쪽을 택하셨다. 늘 감시받는 상황에서 남들 앞에 나서는 걸 몹시 꺼리셨다. 하지만 그런 분도 자식 결혼식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차남의 결혼식 촬영이 있은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백산 선생은 만주 목단강성 형무소에서 옥고 끝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 임종 기록은 친척 동생이자 만주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던 안영제 씨가 1988년 용두산공원에 백산 선생 흉상 건립 사업 당시 남긴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