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말(부산 사투리)을 살리자] 3. 부산말의 도플갱어, 독일 바이에른어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바이에른어진흥협회에서 주관한 바이에른어 알리기 행사들. 바이에른어진흥협회 제공

독일 뮌헨을 주요 도시로 하는 바이에른 주의 경우 최고의 경제 지표와 최저 채무액을 자랑하는 지역이지만 언어에 있어서만큼은 북쪽 지방 독일어(하이저먼·Hochdeutsch)에 밀려 열등하게 취급받고 있다. 독일에서는 19세기 때부터 북쪽 지방의 독일어가 표준어로 정해졌는데 그렇게 된 데는 당시 남쪽이 정치적으로 세력이 약했던 원인도 있지만 루터가 북쪽 지방 언어로 성경을 쓰면서 이를 표준어로 정해 버린 영향도 컸다. 이후 독일에서는 북쪽 지역 사람들이 훨씬 깨끗한 발음을 구사한다는 선입견을 갖게 됐다.

이후 바이에른 등 남쪽 지역이 경제적으로 우월해지고 일자리도 많아지면서 북쪽 지역 사람들이 대거 남쪽으로 내려오게 됐다. 이때 북쪽 지역에서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첨단 분야의 일자리를 찾아 내려왔는데 이들의 경우 자신이 쓰는 하이저먼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해 차츰 남쪽 지역에서도 이들의 언어가 전파되게 됐다.

표준어 '하이저먼'보다 열등 언어 낙인

한때 사투리 사용 못 하도록 금지

차별 인식 시민들, 방언 지키기 나서

노래·연극으로 옥토버페스트서 홍보

최근 학생들 SNS에서 지역어 유행

1960년대 들어서는 미국에서 나온 연구결과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쓰는 어휘가 제한돼 있다'는 연구 결과였는데 독일에서는 이를,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어휘력이 짧다'고 잘못 해석하면서 학교에서도 사투리를 쓰지 못하도록 금지시키게 됐다. 이 같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나중에 부모가 되어서도 아이들에게 지역어를 가르치지 않게 됐고, 그 결과 현재 25세 이하의 젊은 층에서는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것이 독일의 방언학자 베르너 쾨니히(Werner Konig) 교수의 설명이다.

독일에서 바이에른어에 대한 인식이나 대우는 부산말과 매우 유사했다. 주로 코믹 소재로만 다뤄지고 직설적이고 화끈한 언어로 통하는 점 등이 그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에른어는 언제나 하이저먼에 비해 열등한 언어로 인식되고 있었다.

■지역어 지키기, 시민들이 나서다

지난 1989년에는 바이에른어진흥협회(FBSD)라는 시민단체가 만들어지게 됐다. 1960~70년대 학교에서부터 지역어에 대한 억압이 가해진 후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되어오다 결국 바이에른어 권리 보호를 위해 시민들이 직접 나서게 된 것.

협회에는 현재 3천500여 명이 회원으로 있는데 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도 협회 회원이며 독일에서 인기 있는 바이에른 지역 축구선수들도 상당수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협회는 세계적 축제가 된 옥토버페스트에서 바이에른어는 물론 바이에른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는가 하면 유치원과 협력해 아이들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와 연극을 만들기도 한다.

방언은 무식함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두 가지 풍부한 언어를 하는 것일 뿐이라는 인식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20년 넘은 이 시민단체의 존재 이유다. 작문을 굉장히 잘했음에도 사투리를 썼다는 이유로 국어점수를 나쁘게 받은 학생과 전철을 타고 가다 사투리를 너무 심하게 썼다는 이유로 경찰 검문을 당한 사람 등 협회는 지난 20여 년간 지역어에 대한 차별 사례에 맞서 함께 싸워 주는 일도 해 왔다.

호르스트 뮨징어(Horst Munzinger) 협회 회장은 이어 멀리 타국에서 온 기자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선물했다. "누군가를 설득할 때 하는 가장 큰 실수는 비판하는 거예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편을 갈라서, 꼬집듯 지적하거나 계몽적으로 다가서면 오히려 더 힘들어져요.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미있게 다가가야 해요. 저희가 예전에 했던 실수를 한국에서는 반복하지 않길 바랍니다."

바이에른어진흥협회에서 주관한 바이에른어 알리기 행사들. 바이에른어진흥협회 제공 바이에른어진흥협회에서 주관한 바이에른어 알리기 행사들. 바이에른어진흥협회 제공

바이에른어진흥협회에서 주관한 바이에른어 알리기 행사들. 바이에른어진흥협회 제공

■방언은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보너스

학생들에게서 최근 볼 수 있는 고무적인 사례는 아이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휴대폰 문자 등을 사용할 때 바이에른어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더 확실하고, 더 직설적이며,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바이에른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아이들만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바이에른 지역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이에 대해 확대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아이들이 지역언어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학회 등에서 발표가 될 정도로 흥미를 끌고 있다.

바이에른 지역 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 표준어와 방언을 모두 쓸 수 있게 하는 언어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바이에른 주정부 교육문화부 소속 헨닝 기센(Henning Gie en) 수석교사는 "표준어와 방언의 억양 및 발음을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우리 언어 교육의 목표"라면서 "지역 언어를 배우는 것이 지역의 정체성을 배우고 문화를 배우는 데 아주 중요하지만 독일 전 지역의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말 이후 바이에른 지역 학교에서는 모든 학년 수업에 사투리 수업시간이 따로 마련돼 있고 학교별로도 사투리 영화 만들기나 방송 만들기 등 방언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북쪽 지방의 독일어(하이저먼)를 쓰는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사용하지만 바이에른어와 같은 남쪽 지방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움츠려 드는 현실을 보여 주는 만평. 베르너 쾨니히 교수 제공 북쪽 지방의 독일어(하이저먼)를 쓰는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사용하지만 바이에른어와 같은 남쪽 지방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움츠려 드는 현실을 보여 주는 만평. 베르너 쾨니히 교수 제공

북쪽 지방의 독일어(하이저먼)를 쓰는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사용하지만 바이에른어와 같은 남쪽 지방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움츠려 드는 현실을 보여 주는 만평. 베르너 쾨니히 교수 제공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연재됩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