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와 울고 웃고] "배달소년, 문선공, 지국장… 종이신문 30여 년 증인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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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최영수 전 구포현대·주례럭키·학장 지국장

최영수 씨가 부산일보사 로비 신문전시관에서 사내바둑대회 수상 장면 등 옛 사진 등을 들고 당시 납활자 신문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30여 년간 부산일보와의 인연을 통해 아파트도 마련하고 자식공부도 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최영수(63·전 부산일보 구포현대·주례럭키·학장지국장) 씨는 어찌보면 부산일보 등 지역 종이신문의 산증인이다. 어릴 때부터 신문을 배달했을 뿐만 아니라 부산일보 납활자 문선공으로 청춘을 다 바쳤다. 1990년대초 신문제작에 전산시스템(CTS)이 도입되면서 22년간 정들었던 납활자를 떠나 판매국 등에서 일하다 IMF 사태를 맞아 명예퇴직해야 했다.

중2 때 신문배달 시작
발송부·납활자 문선공 등 근무
IMF 사태 맞아 명예퇴직

인생2모작으로 지국 3곳 맡아
판매 힘쓰다 교통사고 당하기도
"눈 침침 조간 함께 못 해 아쉬워"


인생 이모작으로 다시 부산일보 지국 3곳을 맡아 중앙지 물량 공세에 대응하며 신문 보급에 구슬땀을 흘렸다. "본사 직원 출신 지국장 1호라는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195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최 씨는 초등학교 4년 때 부산 서구 대신동으로 이사왔다. 최 씨의 어릴 적 꿈은 '바둑 프로기사' 였다. "동네 어르신들의 길거리 바둑을 어깨너머로 배우다 1년 만에 모두 물리쳤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니 소질 있네. 프로기사 해라'며 애장해온 바둑책도 물려주었지요."

중 2때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졸업 후 인근 기원에서 숙식하며 프로기사의 꿈을 키워나갔다. "이때 아버지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프로기사는 비루먹는다'는 부친의 반대에 부딪혀 최 씨는 결국 꿈을 접고 인쇄소 문선공으로 일해야 했다.

제대 후 최 씨는 1980년 부산일보 발송부를 거쳐 1983년부터 공무국 문선부에서 근무했다. 최 씨는 "당시 애환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신문 헤드라인에 오탈자를 내면 징계를 받거나, 심하면 정보기관에 끌려가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설명. 예를 들면 동료 문선공이 '북괴'의 북(北)자 대신 남(南) 자로, 또 '전 대통령'을 '전 대령통'으로 오탈자 내는 바람에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충을 당하거나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기도 했다는 것. 이 때문에 최 씨는 긴장의 연속 속에서 일해야 했다. "살벌하고 암울한 시절이었지요. 요즘에도 납활자 채자 작업하는 꿈을 꾸곤 합니다."

항상 마감에 쫓기는 기자 등이 날려 쓴 원고지를 해독(?)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소설가 최인호 씨가 소설을 연재하고 있었습니다. 워낙 악필이라 아무도 읽을 수 없었지요. 오직 문화부 기자 한 명만 이해할 수 있었는데 소설 원고가 오면 그 기자가 번역(?)해주곤 했습니다."

최 씨는 사내 바둑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반복해 '최국수'란 별명도 얻었다. "최근 드라마 '미생'를 보면서 속으로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또 1987년 언론민주화 열풍 때 부산일보 노동조합 창립에도 기여했다.

최 씨는 1991년 신문제작 전산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판매국으로 발령났다. "22년간 정들었던 납활자가 하루아침에 없어졌습니다. 매일 납을 다루어야 했기 때문에 납중독의 위험도 많았지만 막상 납활자가 없어지니 섭섭했습니다."

판매국과 창원중부취재본부 등에서 근무하다 1997년 IMF사태를 맞아 명예퇴직했다. 최 씨는 인생 이모작의 일환으로 2002년부터 부산일보 구포현대·주례럭키·학장지점 등 3개 지국을 맡았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신문 배달과 사고처리, 수금 등으로 뛰어다녔다.

"당시 중앙지 물량공세에 대응하는 한편 수시로 그만두는 배달원을 구하고 신문 구독 중지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귀가 꽁꽁 얼고 동상에 걸리기도 하고, 심지어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기도 했다.

"2009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상구 주례 삼선병원 앞 대로에서 오토바이 배달 중 앞서 가던 택시 승객이 차문을 갑자기 여는 바람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충돌, 넘어지면서 오른쪽 어깨를 크게 다치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최 씨는 1개월간 입원, 6개월간 요양해야 했다.

최 씨는 지난해 부산일보 조간 전환이 결정되면서 고민에 빠졌다. "가족들이 '새벽 오토바이 배달이 너무 위험하다'며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저도 눈이 침침해 더 이상 새벽 신문 배달이 어려울 것 같아 결국 지국을 반납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산일보 조간 전환에 동참해 힘을 보태지 못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집사람이 정말 큰 우군이었습니다. 자녀공부에서부터 지국 운영까지 적극 도와주고 노후 걱정을 들게 해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아내와 함께 여행도 다니며 많은 시간을 보내야죠. 또 부산일보 사우회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부산일보 조간 전환 성공을 멀리서나마 응원할 생각입니다." 임원철 기자 wcl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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