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호기자의 피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선욱 부산백병원 성형외과 주임교수
얼굴은 내 삶의 스토리, 성형수술은 살짝 거들 뿐이죠
"예쁜 얼굴에는 스토리텔링이 있습니다. 얼굴에 삶이 녹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매력이 있다는 것은 끌린다는 것입니다. 얼굴은 예쁜데 이야기 하다 보면 정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성미가 없기 때문이죠."
인제대 부산백병원 성형외과 의국에서 만난 선욱(56) 교수는 '내적인 아름다움'이 말장난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음이 예뻐야 외모를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는 것. 성형수술이란 삶에 만족감과 자신감을 주기 위한 보조 행위라는 것이다. 선 교수는 1992년부터 양악수술(안면골격성형수술)을 시작했다. 벌써 23년째다. 수술한 건수도 1천 례 가까이 된다. 부산 지역선 최고 베테랑급인 셈이다.
"얼굴은 예쁜데 정이 가지 않는 건
삶이 녹아 있지 않기 때문
성형은 자신감 높이는 보조 행위
좋은 유전자 가진 듯 착각하게 해"
양악수술 1천 례 부산 최고 베테랑
교수-개원의-교수 특이한 경력 소유
"비전문의 성형수술 안전 유의해야
뼈 성숙 안 된 청소년기 특히 금물"
겨울방학이 낀 요즘이 성형수술 성수기다. 성형외과마다 대학생·직장인들이 넘쳐 난다. 1년 치 수술의 40~50% 정도가 이뤄진다고. 지난주 서울 강남에서 중국인 여성 뇌사 사건이 발생하는 등 수술 중 사고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성형을 하려는 이유는 뭘까.
"미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 속성입니다. 학계에서는 이를 종족보존과 관련지어 설명하지요. 좋은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죠. 예쁘고 멋진 이성에게 끌린다는 것입니다. 우수한 형질을 가졌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리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외모를 가꾸고 장식합니다."
선 교수는 "성형수술이라는 것은 좋은 유전자를 가진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를 상업적으로 발전시켜 거대한 성형시장이 형성됐다는 것. 현대의 성형시장은 성형수술뿐만 아니라 스킨케어·화장품·모발·네일아트 등 다양한 산업분야가 포함되어 있는 공룡시장이라고 말한다. '외모가 곧 권력이고 돈'인 시대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 연구에 따르면 잘생긴 사람이 평균보다 연봉을 5% 더 받는 것에 비해 외모가 떨어지는 사람은 9% 덜 받는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 또 국내 만남 전문업체 선우 여성회원 1만 7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외모를 5단계로 나누었을 때 단계별로 배우자 연봉이 평균 324만 원씩 차이가 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젠 젊은 여자들이 경제적인 동기로 외모를 가꾼다고 보면 됩니다."
선 교수는 몸이라는 것이 예전엔 단순히 노동력과 생식의 근원이었지만 요즘은 사회적 가치를 가진다고 말한다. 특히 '예쁘면 착한 역, 못생기면 악역'이라는 신데렐라증후군을 계속 주입 받아 온 결과 아름다움이 선한 것이라는 '학습된 편견'이 생겨났다고. 결국 이미지 중심 문화가 현대 사회의 특징이라는 것. 성형수술은 언제 왜 시작됐을까.
"20세기 전후 유럽에서 가장 유행했던 성형수술은 매부리코 수술이었습니다. 코 성형의 시초였어요. 특히 독일에서 많이 했지요. 매부리코는 유대인의 특징이었는데 민족차별이 엄청났습니다. 유대인들 대부분은 수세기 동안 전당포업이나 장사 등에 종사했는데 그 이후 부정적 이미지가 고착됐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처럼 안 보이려고 수술했던 것이지요."
선 교수는 현대적 의미의 성형수술은 1차 세계대전 뒤 수많은 부상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얼굴 등 재건수술이 특화되면서 본격화됐다고. 성형외과도 그때 생겼다고 말한다. 얼굴 복원 과정에서 이를 응용한 미용수술도 급속도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수술 도중 문제가 생기는 것은 70% 이상이 마취사고입니다. 양악수술의 경우 바깥쪽에 흉터가 안 나게 하기 위해 입 안쪽으로 수술을 하다 보니 기도 쪽에 피가 고여 호흡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것입니다. 수술 중 기도가 막혔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20% 정도는 안면마비 등 기술적인 문제지요. 반드시 마취시스템이 잘 갖춰진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성형수술로 얼굴에 개성이 사라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할까. 선 교수는 "수술 받는 환자는 다른데 다 똑같은 수술을 하니 문제"라는 설명이다. 잘된 성형수술은 한 듯 안 한 듯 표시가 안 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정체성을 잃지 않게 수술해야 한다는 것. 선 교수는 인제대 의대 1회 졸업생으로 백병원 교수로 근무하다 8년간 개원의로 일한 뒤 다시 백병원으로 컴백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서울백병원에서 국내 양악수술의 개척자인 백세민 교수 밑에서 89년부터 레지던트 생활을 했습니다. 92년 부산백병원으로 내려온 뒤 순전히 경제적 이유 때문에 96년 개업하게 됐지요. 4형제 중 장남인데 집안사정이 안 좋았어요. 김해서 2년, 부산 서면서 6년 등 8년을 개원의로 살았지요."
선 교수는 돈은 원하는 만큼 벌었다고 말한다. 특히 전체 수입의 30~40%를 일본인 환자에게서 벌었다고. 요즘 유행하는 의료관광을 2000년에 시작한 선구자였던 셈. 일본여행사에 지인이 있었는데 선 교수의 명성을 듣고 일본인 환자를 데리고 왔던 것. 요즘은 중국인이 더 많이 온다고 한다. 7:3의 비율로 중국인이 많다고.
"개원의 시절 1달에 1번 정도 얼굴 기형 수술 등 무료 수술 봉사를 했지요. 김해 있을 때 자주 가는 햄버거 가게가 있었는데 팔에 화상을 입어 기능장애가 있는 알바 여학생이 딱해 무작정 병원으로 불러 수술해 준 게 계기가 됐습니다. 그 여학생이 최근 결혼한다고 인사하러 왔을 때 정말 고마웠지요."
일종의 재능기부였던 셈이다. 그 외에도 김해와 서면 외국인노동자진료소 등지에서 토·일 주말을 이용, 의료봉사를 했다. 돈만 버는 것이 불편했다고. 2004년 잘나가던 100평짜리 서면 개원의 생활을 접고 다시 부산백병원으로 돌아가니 친구들이 다 '미쳤다'고 하더라는 것. 연봉으로 따지면 수입은 3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2013년 캄보디아 의료봉사 모습. 김병집 기자 bj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