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대처는 이렇게…] 침묵은 금지… 참지 말고 알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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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가정폭력과 관련해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부산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센터 제공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너무 힘들다."

"무조건 참는 건 말도 안 돼."

지난해 부산 상담 건수 1천960건
부부 2쌍 중 1쌍 1년 한 번 폭력 경험
정서적 학대·신체적 폭력 등 심해

대처 않으면 전이·대물림 심각
여성긴급전화 '1366' 적극 활용
112 신고해 경찰 도움 요청해야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네가 참아야지."

여성 3인이 가정폭력에 대해 나누는 대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5월은 가정의 달, 그러나 평화롭기를 바라는 소망과는 달리 폭력의 아픔 속에 하루하루를 고통으로 보내야만 하는 가정도 있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가정폭력 실태와 이에 대한 대처방법에 관해 알아본다.

■가정폭력의 현주소

일반적으로 가정폭력은 가족 구성원 중에 한 사람이 다른 구성원들에게 의도적으로 또는 잠재적인 의도성을 가지고 물리적 힘을 사용하거나 정신적 학대를 함으로써 고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부산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1천960건(2011년 2천257건, 2012년 2천280건, 2013년 2천228건에 비하면 상담 건수가 다소 줄긴 했으나 유의미한 수치라곤 보기 어렵다)으로, 이를 피해 유행 별로 살펴보면, 정서적 학대(37.6%), 신체적 폭력(36.5%), 경제적 학대(15.7%), 성적 학대(9.6%), 기타(0.6%) 순이었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관계는 배우자가 83.8%, 다음으로 직계 존속에 의한 피해가 8.1%, 과거 배우자 3.9% 순이었다.

여성가족부의 '2013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는 더 놀랍다. 1년(조사 시점 기준)간 부부폭력이 1번 이상 발생한 비율이 45.5%였다. 이는 부부 두 쌍 중 적어도 한 쌍이 가정폭력 피해자나 가해자라는 말이다. 가정폭력 지속 기간도 평균 11년 2개월로 조사됐다. 가정폭력 피해자 중에는 10년 이상 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48.2%에 달했다. 하지만 가정폭력 피해자가 폭력 당시 또는 발생 이후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1.8% 그쳤다. 폭력 발생 시 68%는 '그냥 있었다'고 답했다.

가정폭력은 지속적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대다수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그냥 견디며 지내왔다는 것이다.

부산여성의전화 성·가정폭력상담센터 배은하 센터장은 "특히 가정폭력은 내버려뒀을 경우 '보복', '세대 간 전이'나 '폭력의 대물림' 등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가정폭력 대처방법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 가정폭력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위험한 상황에선 긴급하게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가정폭력을 당할 시 곧바로 여성긴급전화 1366(24시간 운영)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자문하고, 위급할 때에는 반드시 112에 신고해 경찰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특히 부산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센터를 포함해 부산지역 내 11곳 가정폭력상담소에선 가정폭력 상담은 물론이고 법률, 의료, 경찰, 보호시설 연계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할 때는 본인이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한다. 배 센터장은 "흔히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구체적 지원 내용을 요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지 말고 '불안하다', '보호해 달라', '병원진료나 상담을 받고 싶다', '이혼하고 싶다'는 등 본인의 현재 필요한 지원을 구체적으로 요구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나 피해가족들은 보통 가정폭력상담소나 경찰, 1366, 해바라기센터 등을 거쳐 상담을 받은 후 단기쉼터에 입소할 수 있다. 경찰, 여성단체 등은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보호시설(쉼터) 연계, 치료, 직업훈련, 부부상담 등 지속적 도움을 지원하고 있다. 부산 동부 및 서부해바라기여성센터도 24시간 상담, 수사, 법률, 의료, 행정 등 폭력 피해부터 사후 지원서비스가 가능하다.

■피해자 대책 마련 시급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나 피해자 보호 인식이 너무 미약하다는 점은 우리 제도의 큰 구멍이다.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분리해야 하는데,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다.

배 센터장은 "지난해 부산여성의전화를 통해 가정폭력피해를 호소한 내담자 516명 중 11명(4%) 만이 보호시설로 연계돼 입소했을 뿐이다. 보호시설에 입소하지 않은 재가 가정폭력피해여성과 동반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치유프로그램의 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보호시설로 온 가정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 보완도 시급하다. 보호시설의 수용기한이 한정된 데다 부산의 경우 자립을 지원하는 장기시설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학대 아동은 더 취약하다. 가해자인 부모가 친권을 갖고 있어 떼어 놓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성폭력 가해자가 아니면 아무리 심각한 학대를 저질렀어도 친권이 박탈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회인식 바뀌어야

사회구성원 모두가 가정폭력이 '가정 내 일'이나 '자기들끼리의 일'이 아니라 사회문제라고 인식하는 게 가정폭력 근절의 출발점이다. 특히 나이가 어리거나 장애가 있어서 스스로 신고하지 못하는 약자에 대해선 주변 사람들의 신고가 절실하다.

배 센터장은 "가정폭력의 경우 가해자는 폭력이 정당화되고 피해자는 폭력 상황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한다. 요컨대, 10년 정도 폭력을 당하면, 사람이 무기력해 질 수 있다. 그런 그를 보고 주변에선 오히려 '게으른 사람'이나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 등의 편견과 오해를 할 수 있다. 가해자는 이해받고, 피해자는 오히려 의심받는 경우가 생긴다. 이는 가정폭력의 특성을 주변에서 제대로 보지 못한 부분이다. 이런 잘못된 사고방식이 가정폭력을 지속시키는 데 일조한다"고 말했다.

경찰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 초기 대응 강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경찰 중 25.7%가 '가정폭력은 가정 문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을 가벼운 가정 문제로 인식하는 경찰의 생각 전환, 여기에 우리 모두의 관심과 신고, 피해자의 강력한 의지가 우리 사회를 가정폭력에서 지켜낼 수 있다"고 말한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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