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
돌베개/장준하
'광복 조국의 하늘 밑에는 적반하장의 세상이 왔다. 펼쳐진 현대사는 독립을 위해 이름 없이 피 뿜고 쓰러진 주검 위에서 칼을 든 자들을 군림시켰다. 내가 보고 들은 그 수없는 주검들이 서러워질 뿐, 여기 그 불쌍한 선열들 앞에 이 증언을 바람의 묘비로 띄우고자 한다.'
박정희가 세 번째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 김대중 후보를 가까스로 이긴 1971년. 장준하 선생은 항일 대장정 수기 '돌베개'를 펴내며 이렇게 말했다.
장준하 사망 40주기 개정판
日 학도병 탈출·항일 운동 시절
조국 현실에 대한 냉철한 비판
역사소설 읽는 듯한 수기집
'영원한 광복군'은 '적반하장의 세상' 광복 조국에서도 이승만 독재와 싸웠고, 박정희 독재 정권에 맞서 유신 철폐 운동을 벌였다.
1975년 그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지 올해로 40년. 이 '적반하장의 나라'에선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고 '적반하장'엔 가속도마저 붙었다. 그가 띄운 '바람의 묘비'가 40여 년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 더 절절히 와 닿는 이유다.
장준하 사망 40주기를 맞아 전면 개정된 '돌베개'가 나왔다. '1944년 7월 7일. 이 날은 광활한 대지에 나의 운명을 맡기던 날이었다.…풍전등화의 촛불처럼 나의 의지에 불을 붙이고 나의 신념으로 기름 부어, 나의 길을 찾아 떠난 날이다.' 뭔가 뜨거운 기운을 솟구치게 하는 이 첫 단락을 읽고도 책을 슬며시 덮기란 힘들다.
청년 장준하가 일본군 '학도병'으로 차출됐다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장면부터 시작하는 '돌베개'는 그가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후세에 남긴 치열하고도 준엄한 항일수기다.
이범석 장군의 '우등불'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의 '장정'과 함께 광복군이 직접 쓴 회고록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혀 왔다.
책은 탈출에 성공해 임시정부 광복군에 투신한 청년 장준하의 6천 리 항일 대장정 기록이다.
온몸을 녹일 듯한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불길한 예감이 별똥별처럼 떨어지는' 밤에도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필사의 질주는 일행의 뛰는 맥박이 느껴질 듯 생생하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젊은 목숨을 광복 전선에 내놓은 청년. 장준하는 미국 전략첩보대(OSS)에서 특수훈련을 받고 연합국 한반도 상륙작전 개시만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일본의 항복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돌베개 / 장준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