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변방인'이 쓴 13년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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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다 1,2-흠영 선집 / 유만주

조선의 지식인 유만주가 13년 간이나 썼던 일기 흠영. 1787년 5월 11일자 일기엔 위독한 아들의 병세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돌베개 제공

'이미 지나간 30년을 생각해 보면 부끄럽고도 가소롭다. 아직 오지 않은 30년은, 다른 식으로 무언가 해 내어 볼 만하고 기뻐할 만한 삶이 될 수 있으려나….'

조선시대 사대부 지식인의 일기
18세기 한양의 빈부격차 문제
몰락한 양반의 상대적 박탈감
과거제의 폐단 고스란히 담아


뜻대로 이룬 것 없이 쌓인 세월과 불안한 미래가 조바심을 더하는 나이. 언제 잔치를 한 적도 없지만, '잔치는 끝났다'고 여기는 대한민국 고단한 서른 살의 한탄일까.

이 낯익은 반성을 남긴 주인공은 놀랍게도 1784년 서른이 된 조선의 선비 유만주다.

규장각에는 24권이나 되는 낡은 일기장이 보관돼 있다. 230년 세월의 더께가 쌓인 이 방대한 일기의 주인은 서울 남대문 근방에 살았던 사대부 지식인 유만주(1755~1788). 조선 영조 31년에 태어나 영·정조 시대를 살았던 그는 33년 짧은 생을 '흠영'이란 일기에 오롯이 남겼다. 유만주의 자호이기도 한 흠영은 '꽃송이와 같은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을 흠모한다'는 의미다.

스무 살이 된 1775년 1월 1일부터 13년간 그가 쓴 '흠영'에는 조선의 지식인 유만주의 고뇌와 역사가 미처 짚지 못한 18세기 조선의 이면까지 생생히 담겨 있다.

일기를 쓰다 1,2-흠영 선집 / 유만주

'일기를 쓰다 1·2권 흠영 선집'은 흠영 연구에 천착해온 김하라 규장각 선임연구원이 '흠영' 24권 중 이 시대에 의미 있는 부분을 모아 엮고 해설을 붙힌 책이다.

과거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인생의 실패자로 낙인 찍히던 시대. 유만주는 거자(과거 시험 응시생)로 보냈던 4년 세월을 돌아보고 이루지 못한 세월을 냉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직분 없는 사대부 지식인인 그는 '나는 누구인가'를 해명하기 위해 자신의 재능과 원하는 직업, 취향과 욕망을 평생 탐구해온 인문학자였다. 그래서 남들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눈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길을 찾아냈다.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세상. 선비 유만주는 자신을 알고 지키면서 문학을 통해 약점을 극복해 나가려했다. 그는 진정한 영웅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라 여겼다.

시대에 대한 통찰력 있는 역사가이자 시시콜콜한 인간사에 해박한 소설가. 자연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쏠린 몽상가. 그의 일기는 조선의 정치 사회적 문제와 과거 제도의 문제점, 스스로에 대한 반성, 이웃에 대한 통찰, 걸어다니며 마주한 18세기 서울의 아름다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을 넘나든다. 인문학서로도 다채로운 빛깔을 띠는 흠영을 따라가다 보면 올곧게 살고자 한 '시대의 변방인'의 외로움이 느껴져 가슴이 뻐근해진다.

당대에 이해받지 못한 그의 글쓰기는 200여 년 세월이 지난 지금 여전히 힘겨운 이 땅에서 오히려 빛을 발한다.

유만주는 직분은 없었지만 사대부로서 책임감을 잃지 않고 당시의 정치 상황을 지켜보고, 정치가 미처 보지 못한 백성들의 아픔도 짚어냈다.

'지금 사대부들에게서 명분과 절개는 쓸어버린 듯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작은 이익이나마 보게 되면 그저 못할 일이 없다. 못할 일이 없으니 애초에 나랏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역사는 18세기 후반 조선의 한양을 상공업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하는 풍요로운 곳으로 그린다. 하지만 유만주는 극심한 빈부 격차와 상대적 박탈감 등 당시 화려한 서울의 이면에 잠복한 사회문제를 또렷하게 들여다봤다. '모든 물건 값이 앙등한 까닭은 도고(상품의 매점매석을 통해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던 상행위)의 극악한 폐단 때문'이란 분석도 한다. 도고가 빈익빈 부익부의 주요 원인이란 것이다.

조선 후기 몰락하고 있는 양반 계층의 속내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는 '양반에게 가난이란 사형선고'라고 생각했고 남편이 과거에 합격해 출세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속물적인 아내들 앞에 낯을 세우지 못하는 무능한 선비들의 아픔도 짚었다.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고, 위험도 이런 위험이 없고, 곤란도 이런 곤란이 없고, 강박도 이런 강박이 없다.' 유만주는 선비들이 과거에 목을 매는 것을 이렇게 한탄하기도 했다.

13년을 쉼 없이 이어온 그의 일기는 큰아들에게 주려는 선물이었다. '아들의 스승이 되기에 충분한 행실이 없고, 가르침이 되기에 충분한 말을 해 주지 못하며, 남겨 주기에 충분한 문예 작품도 쓰지 못하므로, 이 일기를 남겨 주어 박문 다식한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되게끔 하려 했다'는 것이다. 꿈속에서도 연꽃 한 송이를 큰 아이에게 주려고 챙겼던 마음 따뜻한 아버지. 하지만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흠영을 받지 못하고 열두 살 짧은 생을 병으로 마감했다. 아들이 죽은 지 1년이 안돼 그도 세상을 떠났다. 그는 '경험을 날마다 기록해 기억으로 만드는 것으로 하늘이 준 목숨을 완성했다.' 유만주 지음/김하라 편역/돌베개/1권 332쪽·2권 316쪽/각 1만 1천 원.

강승아 선임기자 se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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