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멘토-장제국 동서대 총장 편] 日 게이오대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 中 중남재경정법대 오한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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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힘으로 학자가 되고 합작대학도 만들다

2011년 장제국(오른쪽) 박사의 제7대 동서대 총장 취임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온 오코노기 마사오(왼쪽) 교수. 동서대 제공

내 인생의 멘토라면, 두 분이 생각난다. 바로 학자의 길로 인도해준 은사, 일본 게이오대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와 중국 합작대학을 설립하는데 도움을 준 친구, 중국 우한 시 중남재경정법대의 오한동 총장이다.

미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변호사의 길을 걷고자 로스쿨로 진학했다. 1994년 졸업 후 일본 종합상사인 이토추상사에 들어갔다. 얼마 후 1차 북한 핵 위기가 발생했다. 회사에서 "비즈니스 차원에서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
日 기업 다니며 북핵 자문 위해 만나
헤어질 때 박사과정 공부 제안받아
물심양면 지원에 학자로 자리매김

·오한동 총장
美 로스쿨 유학 시절 함께했던 절친
한중 합작대학 설립 차 訪中 때 재회
의기투합해 중국 당국 설득해 성사


일본 신문과 잡지를 보니 한반도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의 이름이 많이 나와 있었다. 이분에게 자문을 구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 "만나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동의했다. 초면인데도 정말 친절했다.

2시간 가까이 질문과 토론 후 일어서려고 하니 "우리 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해볼 생각이 없나"라고 제의했다. 그 자리에선 '없다'고 대답했지만 돌아온 후 그 제의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얼마 후 '(시험에)붙으면 가자'는 생각에 시험을 쳤고, 합격했다.

이때부터 일과 학업, 즉 주경야독의 생활이 시작됐다. 그런데 제자가 되고 나니 그렇게 친절했던 그분은 굉장히 차가워졌다. 워낙 바쁜 분이라 만나기도 어려웠다. 논문 써서 들고 가도 잘 봐주지도 않았다. 이때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

박사과정 3년 차 때 일이다. 외부 연구 잡지에 논문 2편을 게재해야 박사학위 논문을 쓸 자격이 주어지며, 이 또한 지도교수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외부 잡지에 게재할 논문을 써 지도교수에게 보여 주니 "연구실에 두고 가라"고 했다. 그런데 1주일 후 논문을 받아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일본어 문법부터 코멘트 보충까지 빨간 펜으로 꼼꼼히 수정되어 있었다. 그분의 논문을 읽으면서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며 느낀 적도 많았지만 이때 은사의 참뜻을 처음 깨닫고 크게 감명받았다. 지도교수는 그동안 인간적인 관계를 떠나 3년간 내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며 엄밀하게 논문을 지도해준 것이었다.

일본에선 박사학위를 따면 학회에 데뷔해야 한다. 은사는 오키나와에서 열린 아시아정경학회에서 데뷔할 기회도 만들어주었다. 또 청중 맨 앞에 앉아 무언의 격려도 보내주었고, 발표 후에 손을 들어 질문하면서 지원사격도 해주었다. 발표 후 은사가 다가와 "잘했어, 이 정도면 된 거야"라며 어깨를 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일본뿐 아니라 국내 정관계에도 인맥이 풍부한 은사는 2003년 귀국한 후 국내 인사들에게 나를 소개해주는 등 학자의 길을 걸어가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2011년 동서대 7대 총장으로 취임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축하해 주었다. 또 정말 대견스러워했다.

이때 "교수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었을 텐데…. 내 인생 책임져라"며 농담하자 은사는 "(너를)처음 만났을 때 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미안하다. 인생을 바꿔서"라고 웃었다.

요즘도 은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를 일본으로 초청해 주고 있다. 일본 언론에선 한반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은사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정열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은사의 한결같은 모습은 나에게 항상 귀감이 되고 있다.

두 번째 멘토인 중남재경정법대의 오한동 총장은 동서대가 중국에 한·중 합작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도와준 분이다.

2003년 동서대 교수로 부임했다. 부총장을 맡게 되면서 '앞으로 중국의 시대에 대비해 중국에 합작대학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하루는 중국 대사관 교육담당 참사관이 서울 코엑스에서 중국 대학 전시회가 열린다고 알려왔다. 참사관 지인의 소개로 중국 우한 시 중남재경정법대 부총장을 만났다. 그를 부산으로 초청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이 대학과 자매 결연을 맺게 됐다. 이를 위해 2006년 우한을 방문했다.

총장실에서 오한동 총장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미국 로스쿨 유학 때 함께 공부했던 친구였던 것이다. 그는 1991년 중국 재무부 소속 공무원으로 미국 로스쿨에 유학을 왔다. 미국 생활을 어려워하는 그를 위해 수업 내용 필기 노트도 보여주고 식사도 함께 하면서 친하게 지냈었다. 그런데 10여 년 만에 중국에서 재회한 것이다.

합작대학 설립에 대해 이야기하니 그는 "친구 끼리 뜻을 모아 대학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는 합작대학 설립을 위해 수십 차례 베이징을 방문해 교육부 담당자를 설득하는 등 정열을 쏟았다. 4년간 노력 끝에 합작대학을 설립, 현재 애니메이션과 영상영화 분야 2개 학과 300명(150명씩)의 중국 현지 학생을 뽑아 교육시키고 있다. 올해 첫 졸업생도 배출했다. 

2011년 동서대와 중국 중남재경정법대가 한·중 합작으로 설립한 '한중국제교육학원'의 오픈식에서 오한동(왼쪽) 총장과 장제국 총장이 현판 제막 후 박수를 치고 있다. 동서대 제공
우한 시는 애니메이션·게임 콘텐츠 산업기지를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에서도 애니메이션 70% 정도의 국산화 방침을 세워놓고 있어 졸업생들이 앞으로 크게 활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수업 시간 틈날 때마다 젊은 학생에게 두 분의 멘토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은사는 아마 내가 2시간 동안 북한 핵 위기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박사과정을 제의했을 것이다. 또 로스쿨 때 다져진 우정이 없었으면 한중 합작대학 설립이란 결실을 맺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리=임원철 기자 wcl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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