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시설 폐쇄'에 장애인들 "우린 인권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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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실로암의 집'은 예전 '형제복지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 이곳 중증장애인들이 이삿짐처럼 옮겨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들을 그냥 다른 시설로 옮기면 그뿐인가요? 설 연휴가 코앞인데, 장애인들을 보살피던 29명의 종사자들도 조만간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법인(옛 형제복지원)이 부산시를 상대로 제기한 법인 취소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패소(본보 지난달 25일 자 8면 보도)해 법인 해산 절차를 밟게 됐다. 1970~1980년대 폭행과 암매장 등으로 500여 원생의 목숨을 빼앗은 악명 높은 '형제복지원'은 사라지게 됐지만, 해산 과정을 둘러싼 문제들이 하나둘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법인을 관리·감독해야 할 부산시의 부실, 뒷북 행정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옛 형제복지원 해산 절차
애꿎은 '실로암의 집' 불똥
법인 운영 탓 입소자 옮겨야
직원 29명도 실직 위기

기장군 정관면 '실로암의 집'의 한 종사자는 "옛날 '형제복지원'과 법인이 관계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지원이 한 푼도 되지 않아 장애인들이 휠체어도 못 들어가는 좁은 화장실을 기어 들어가 사용해 왔다"며 "지원은 해 주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 행정 편의에 따라 대안 없이 시설 폐쇄만 강행하려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법인이 해산되면 현재 '실로암의 집' 입소자 42명은 집이나 다름없던 거처를 다른 시설로 옮겨야 한다. 이곳 장애인들은 신체적인 장애 외에도 조울증, 뇌전증, 부적응과 자해 같은 각종 중복 질병과 문제를 안고 있는 상태다.

법인의 재산 처분과 관련된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형제복지원' 전 대표인 박인근 씨 일가는 부산시의 '법인 설립인가 취소처분' 전인 2014년 5월에 이미 100억 원대의 차익을 남기고 복지법인을 매각한 것으로 알려져 '뒷북 행정'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박민성 부산사회복지연대 사무처장은 "부산시는 법인 해산 뒤 남는 재산을 국가와 시에 귀속시키겠다고 하면서 정확한 재산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주요 재산인 '사상해수온천'이 경매를 통해 현재 법인 대표의 가족에게 싼값에 넘어간 정황이 있어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부산시가 '실로암의 집' 장애인들을 옮기려는 시설에 대해 "전직 공무원들이 시설장으로 있는 '관피아' 시설"이라며 "장애인 수만큼 지원금이 나오니 입소자들을 보내 주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 부산시 관계자는 "해묵은 '형제복지원' 사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있었고, '사상해수온천'은 은행권에 진 빚 문제로 경매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관피아 시설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장애인들도 다른 시설에 가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곧 적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사무처장은 "시설 장애인들의 복지는 뒷전이고 단순히 법인 해산, 시설 폐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산시의 안일한 행정이 문제"라며 "법인 청산을 현재 법인 관계자들에게만 맡겨 두지 말고, 부산시와 민간의 중간 대리인 등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번 사태를 제대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윤·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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