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영화'를 본다고?
입력 : 2016-02-21 19:04:13 수정 : 2016-02-23 12:41:26
위에서부터 문경원·전준호 '세상의 저편'.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요즘 부산시립미술관 2층에 가면 매일 11편의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다. 영화도시 부산인 만큼 도서관, 주민센터, 미술관에서 영화 무료 상영회를 하는 건 이제 특별한 행사도 아니지만 매일 11편의 무료 영화 상영은 확실히 관심이 쏠리는 사건이다. 무슨 일일까.
부산시립미술관은 11편의 영화 상영을 위해 2층 전시실을 몇 주간 밤샘 공사를 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영화마다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빛과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11개의 상영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이렇게 시립미술관이 애를 많이 쓴 것은 이 영화들이 단순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세계적인 작가가 만든 일명 '예술 작품'이다. 이 상영회의 제목은 '스테이징 필름:비디오아트, 공간과 이미지의 체험'전이다.
부산시립미술관
'스테이징 필름' 전
영상 예술 확장 위해
'비엔날레급' 전시
전준호·앙리 살라 등
국내외 작가 11명 참여
2~3개 스크린 활용
화면 교차돼 이미지 만들어
부산시립미술관 김영순 관장은 "세계적인 영화제를 매년 성공적으로 열고 영화 도시 부산이라는 명성도 있는데 정작 부산에선 국제적인 수준의 비디오 아트 전시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영상예술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확장시켜주고 싶었다"고 이번 전시 취지를 설명했다. 김 관장은 '제대로 보여주자' 싶어 국제적인 큐레이터 팀 펠라스에게 연락해 이번 전시 기획을 맡겼고, 그야말로 '비엔날레급의 전시'가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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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옵 드 비익 '스테이징 사일런스2'.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이번 전시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던 부산 출신 영상 작가 전준호를 비롯해 앙리 살라, 빌 비올라, 한스 옵 드 비익 등 국제적인 지명도를 가진 영상작가 11명이 함께했다. 특히 전시 작품 대부분이 국내 최초 공개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열린 비디오아트 전시 중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사실 비디오아트 전시는 전시 기획과 준비 비용, 설치 등이 무척 까다로워 국공립 미술관이나 사설 갤러리 모두 선뜻 시도하기가 힘들다. 이런 이유로 광주나 부산 비엔날레에서나 몇 편의 비디오아트를 만날 수 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비디오아트 작품들은 놀랍고 신선했다. 영화관에서 만나는 영화와는 분명히 다르다. 영화 제작자가 이야기의 흐름과 배우에게 관심을 둔다면 비디오아트 작가는 관객의 경험 형태와 이미지, 공간의 구성을 통해 영상매체 자체의 경계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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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 'The Looks'.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한 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작품도 있지만 2, 3개의 스크린을 활용해 두 화면이 서로 교차되고 연동하며 이야기와 이미지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전준호 작가의 '세상의 저편'은 과거와 미래라는 두 개의 시점에서 두 개의 영상이 동시에 상영된다. 과거의 남자와 미래의 여자는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과거 영상의 남자 행동이 미래 여자의 화면까지 영향을 끼친다. 재미있는 사실은 전 작가의 영상에 배우 이정재와 임수정이 무료로 출연했다는 점이다. 13분짜리 영상인데 톱스타인 두 배우가 일주일에 걸쳐 한 푼의 수고비도 받지 않고 촬영에 참여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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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린 네샤트 '황홀'.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영국 작가인 미카일 카라카스가 만든 '해녀'라는 작품은 제주 해녀들의 전통 호흡법 '숨비소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2개의 영상은 교차해서 해녀들의 물질과 숨비소리, 바닷물의 흐름을 보여준다. 따로 떨어진 2개의 스크린의 중앙에 서면 마치 관람객이 바닷속에서 물질을 하는 착각에 빠진다. 수동적으로 앉아서 화면을 보는 영화와 달리 비디오아트 작품이 관객에서 선물하는 매력이다. 작품마다 작가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나 유쾌하게 관람할 수 있다. ▶'스테이징 필름-비디오아트, 공간과 이미지의 체험' 전=4월 17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 2층 전시실. 051-744-2602.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