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구경꾼인 동시에 능동적 해석가
해방된 관객 / 자크 랑시에르
한 초등학교 교사가 아이들에게 내어준 '생각하는 과제'. 사진 속엔 앙상한 헐벗은 어린이가 땅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있다. 그림을 보고 '그림 속 아이와 자신을 비교해 보고,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이유를 들어 설명해 보라'는 문항에 아이는 이런 답을 꾹꾹 눌러 썼다. "남의 아픔을 보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같이 아픔을 해결해주려 하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될 것이다." 아이의 이 기특한 답변은 SNS상에 떠돌며 수많은 누리꾼을 울컥하게 했다.
교육 정치 문학 영화 미술.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유하는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이런 것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저런 결론을 끌어내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 바보를 만드는 교육자의 논리'라고 했다.
'지적 평등과 해방'이라는 화두
예술영역으로 확장한 책
창작자-관객 고정관념 깨고
'평등한 관객'의 자리 탐색
그의 책 '무지한 스승'은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의 지적 능력은 평등하다고 강조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한 지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해방되려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무지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의 지적 능력은 평등하지만 그 지적 능력의 발현에 차이가 있을 뿐. 랑시에르는 진정한 스승은 앎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제자가 스스로 해방되도록 돕는 존재여야 한다고 했다.
'해방된 관객'은 랑시에르가 '무지한 스승'에서 제기했던 '지적 평등과 해방'이라는 화두를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한 책이다. '능동적' 창작자와 '수동적' 관객이라는 고정관념을 전복하고 지적 불평등의 고리를 연극, 그림, 사진, 영화, 비디오 등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해 '평등한 관객'의 자리를 찾아간다.
관객은 늘 연출자나 감독의 의도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인가. 학생이 '배워야' 하는 것은 스승이 학생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 관객이 '보아야 하는' 것은 연출가가 관객에게 '보게 만드는' 것. 저자는 이 논리가 '바보 만들기'의 핵심이라고 했다.
관객은 '거리를 둔 구경꾼인 동시에 능동적인 해석가'이기 때문이다. 랑시에르는 관객의 역할은 '주의'라고 했다. 집중해서 보거나, 들을 때 관객은 이미 자기 고유의 저작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관객이 된다는 것은 읽거나 보거나 들은 것들이 낳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기존의 것을 변이시키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칠레 출신 예술가 알프레도 자르가 르완다 대학살을 다룬 설치 작품 '구테테 에메리타의 눈'(1996년)은 자신의 남편과 두 아들이 학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여인의 눈을 담은 단 한 장의 사진을 라이트박스에 넣고 만들어졌다. 작품은 대학살의 참혹한 스펙터클 대신 여성의 시선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또 다른 작품 '리얼 픽처스'(1995년)에선 학살당한 투치족의 모습을 담은 이미지를 검은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상자 위에는 그 사람의 이름과 역사, 이야기를 썼다. 100만 명이 희생된 건 바로 100만 개의 우주가 사라진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저자는 '이미지는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 사이의 관계가 벌이는 복잡한 게임'이라고 했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자크 랑시에르. 부산일보 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