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자만이 알게 된다
입력 : 2016-08-04 19:05:09 수정 : 2016-08-07 16:28:46
액자 속 그림은 그림 속에 문기(文氣)가 가득했던 능호관 이인상의 '송하독좌도'. 돌베개 제공 "그 사안의 의미와 중요성을 오랜 기간 공들여 설명해 놨는데, 담당 공무원이 바뀌었어요. 또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다니…."
어느 교수님이 허탈해하며 말했다. 그의 넋두리를 듣다 보니 어쩌면 성현들의 입장에선 세상사야말로 '자꾸만 업무 바뀌는 공무원' 같지 않을까 싶었다. 이미 수천 년 전에 세상의 바른 이치를 일껏 일러 놨건만, 잘못된 역사는 시대마다 얼굴만 달리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으니. 전지전능한 어떤 주체가 있다면 '그렇게 가르쳤건만, 이것들을 또 가르쳐야 하나' 한숨 잘 날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현대인
그림으로… 글로… 선배들의 '조언'
18세기 문인화가 "맑고 진실하게 살아라"
97세 철학자 "성장하는 동안 늙지 않는다"
누구도 찾아가는 서비스로 친절한 '깨달음'을 전해주진 않지만, 책 속에 있는 그 많은 길은 그래도 기꺼이 찾으려는 사람들의 것이니.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오랜 질문에 대한 깨달음을 나누려는 저자들의 노력은 시대를 넘나든다. 삶과 문학과 예술이 하나였던 기개 높은 조선시대 문인화가 이인상의 문학적 면모를 어렵게 재조명(능호집)해 내기도 하고, 100세를 바라보는 인생의 언덕에서 한국 철학의 대부는 인생론(백년을 살아보니)을 내놨다.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 소동파의 말은 당나라 시인 왕유나 원나라 예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18세기 문인화가 능호관 이인상의 그림에도 문기(文氣)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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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호집 상·하 |
<능호집 상·하>는 삶과 문학과 예술이 다르지 않았던 이인상의 삶을 그가 남긴 문학을 통해 복원해 낸 책. 걸출한 화가로 널리 알려진 이인상의 문학 세계가 담긴 문집 '능호집'(凌壺集)을 국내 최초로 완역했다. 능호집을 옮긴 박희병 교수(서울대 국문학과)는 연암 박지원의 문학에 흥미를 느껴 한 세대 위의 선배 이인상에 주목하게 됐고, 시·서·화가 하나였던 이인상의 매력에 젖어 번역을 시작한 지 무려 16년 만에 <능호집>을 내놨다.
청빈했던 이인상은 너무 가난해 자주 집을 옮겼는데 이를 딱하게 여긴 벗들이 나서 남산 높은 곳(기슭의 좋은 터는 부자들이 다 차지했기 때문)에 작은 거처를 마련해 줬고 이 집이 '능호관(凌壺觀)'이었다. 방장산을 능가할 만큼 경치가 좋은 집이란 의미다.
이인상은 '지행합일'의 지식인이었다. 그의 시는 '맑고 진실한 그의 인간됨과 일치'하고, 현실적 이익에 타협하지 않는 기개는 '설송도' 등 그림에도 오롯이 담겨 있다.
'무릇 명성과 비방은 밖에 있는 것이어서 자기가 간여할 수 있는 바가 아니고, 도리와 덕성은 안에 있는 것이니 수양하여 훌륭하게 할 수가 있다.'(송사행에게 답한 편지 중) 그는 자신의 벗들에게 올곧은 충고를 서슴지 않았고, 스스로도 엄정한 이념적 자세로 꼿꼿한 삶을 살았다. 이덕무가 남긴 기록에는 '늙은 아전에게 오륙십 년 이래 누가 가장 선정을 했느냐고 물으니 능호라고 답했다'는 구절이 있지만 이인상은 '작은 고을(음죽)의 수령으로 일을 함에 잘못이 많아 밥 먹을 때 얼굴이 부끄러워 때로 책을 보면서 스스로를 경동하려 하지만 글이 마음에 잘 들어오지 않아 벼슬을 그만두어 허물이 적기를 바라'기도 한다. '군자가 자신의 몸을 닦는 것과 세상에 도를 행하는 것은 둘이 아닌 하나의 도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오직 아는 자만이 알게 될' 한 지식인의 슬프고도 웅대한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책. 이인상 지음/박희병 옮김/돌베개/상권 594쪽 하권 548쪽/8만 원(각권 4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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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을 살아보니 |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어 사람들과 소통했고 그 한 방법으로 글 쓰기를 택한 철학자. 한 시절 젊은이들의 삶을 흔들었던 김형석 교수의 첫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이제 100세를 바라보는 97세 철학자는 인생의 언덕에서 <백년을 살아보니>를 냈다. 노 철학자가 담담한 듯 강건하게 전하는 메시지는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는 것. '50대 이상 어른들이 독서를 즐기는 모습을 후대에 보여 줘야' 하는데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들'에게 전하는 일침인 셈이다.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사이'라는 저자는 '청년기에는 용기와 꿈, 장년기에는 신념, 노년기에는 지혜가 있어야 행복하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문제의식을 갖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장년기인 60세까지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신념이 있어야 하고, 노년기에는 후배들에게 조언해 줄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 이 지혜는 그냥 주어지진 않는다. 청년기와 장년기를 치열하게 보낸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김형석 지음/덴스토리/300쪽/1만 5000원. 강승아 기자 se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