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집토끼와 산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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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택 서울정치팀장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논쟁이 있다. 바로 '집토끼'와 '산토끼' 싸움이다. 대통령선거나 총선 등 대형 선거과정에서 기존 지지세력을 더욱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집토끼론'과 중도나 반대세력을 적극 흡수해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산토끼론'의 대결이다. 어느 전략이 유리한지 뚜렷한 결론은 없지만 출마 당사자는 물론 선거 전략가들의 최대 고민 중 하나다.

정치 선진국인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른바 '중도선점' 전략과 '갈라치기' 전략의 대결이다.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정치 컨설턴트 딕 모리스가 구사한 전략이 공화당의 이슈를 뺏어 오는 '중도선점 전략'이라면, 조지 W 부시(공화당)의 정치 컨설턴트 칼 로브가 주도한 '갈라치기 전략'은 보수세력을 더욱 결집시키는 것이다. 칼 로브 방식은 '집토끼론'과 가깝고, 딕 모리스의 전략은 '산토끼론'과 비슷하다.

역대 선거 단골 메뉴 '토끼 논쟁'
PK 출신 주자들 고향서 '푸대접'
고향서 인정받아야 대통령 가능
집토끼 공략은 선택 아닌 필수

그렇다면 집토끼와 산토끼를 모두 잡으면 되지 않을까? 기존 지지층을 내 편으로 계속 유지하면서 반대세력까지 껴안거나 외연 확대와 지지층 공략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 말이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손자병법 '허실' 편에도 '무소불비 즉무소불과(無所不備 則無所不寡)'라는 말이 있다. '모든 곳을 다 지키려면 모든 곳이 약해진다'는 말이다. '토끼 논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비유는 아니지만 그만큼 모든 것을 다 얻는 게 힘들다는 얘기다.

부산·울산·경남(PK) 출신 유력주자인 김무성(새누리당) 문재인(더불어민주당) 안철수(국민의당) 전 대표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이제는 선택의 시점에 와 있다는 의미다.

집토끼와 산토끼 논쟁은 크게 이념과 지역으로 구분된다. 진보 성향의 후보가 안보문제와 같은 보수 이슈를 선점하고, 보수 후보가 경제민주화 등 진보 어젠다를 주도하는 것이다. 진보 쪽 문재인 후보가 군부대를 자주 방문하는 것이나 보수 성향의 김무성 후보가 '양극화 해소'에 주력하는 것은 이념적 측면에서의 '산토끼 잡기'다.

이념이나 정책적 분야에서의 '외연 확대'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여전히 30%가 넘는 '부동층'을 흡수하지 않고는 대선에서 절대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역적인 측면에서의 '토끼 논쟁'이다. 자기가 태어났거나 연고성이 높은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느냐, 아니면 자신과 무관한 지역에 더 많은 공을 들이느냐의 문제다. 당사자들이 선택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확실한 정답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김·문·안 세 사람의 현재 PK 지지도로는 절대 내년 대선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갤럽이 6~9월 실시한 네 차례 여론조사에서 세 사람은 PK에서 한 번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이겨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문 전 대표가 10월 조사에서 반 총장을 약간 앞섰을 뿐이다.

PK는 우리나라 전체 유권자의 16%를 차지한다. 서울·경기 다음으로 유권자가 많다. 게다가 '표의 결집력'도 높다. 내 편이라고 생각하면 확실하게 밀어 준다. 14대 대선 때 김영삼은 전국 평균(42%)보다 31%포인트(P) 많은 73%를 부산에서 득표해 평생 숙원이었던 대통령 꿈을 이뤘다. 16대 대선 때 노무현은 부산에서 전국 평균(49%)보다 20%P 적은 29%밖에 얻지 못했지만 그 전의 김대중(15%)보다 14%P나 많이 얻어 '서민 대통령' 시대를 열었다. 18대 대선 때 문재인은 고향인 부산에서 20%P 가까이 박근혜에게 뒤져 결국 무릎을 꿇었다.

이제 결론은 분명해졌다. 상대 진영의 어젠다를 선점하고 외연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PK의 인정을 못 받는 PK 출신 대통령'은 절대 출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 PK 주자들은 무슨 수단을 동원하든 절대 집토끼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선택은 세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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