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와 함께 떠난 배우 이은주에 대한, 12년전 마지막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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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영화 '주홍글씨' 스틸컷


이은주. MBC `불새` 제공

12년 전이다. 2005년 2월 22일 오후는 오늘처럼 날씨가 흐렸다. 그녀의 죽음에 관한 첫 소식은 비와 눈이 구분되지 않는 가운데, 면도날처럼 날아들었다. 다른 취재 목적으로 분당 인근에서 이동 중인 상태였다.
            
'배우 이은주가 '죽었다고 한다'.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분당 집에서 인근 병원으로 옮기는 중이라고 한다. 분당 수내동 근처 병원으로는 C병원과 J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이 있다' 
             
오후 3시께 분당 J병원에 119 응급팀과 경찰에 이끌려 도착했을 때 이은주는 이미 싸늘한 상태였다. 응급실로 향하는 이동 침대 모서리에 그녀의 맨발이 하얗게 삐져나왔다. 오빠 등 당황한 가족들이 속속 도착했지만 그녀가 떠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빈소가 차려지기 전에 병원으로 취재진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소속사 나무엑터스 관계자들도 속속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당황스럽기는 모두 마찬가지였다. 인기 절정의 여배우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당시에도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서둘러 이은주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사망원인에 대해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유서는 사건 이후 수사 중에 발견됐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방을 깨끗이 정리한 후 '엄마 미안해 사랑해'라고 시작되는 유서를 남겼다. 혈서라는 얘기도 들렸지만, 커터칼 등으로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에 남은 혈흔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려지게 됐다.
            
빈소가 차려진 후 그녀와 절친했던 동료 배우 등 조문객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바다, 전인권, 정혜영, 션, 이병헌, 차태현, 유준상, 홍석천, 이종수, 한석규, 김태우, 설경구, 홍은희, 소유진, 김정현, 추자현, 신은정, 도지원, 김지수, 김주혁, 김민정, 성현아, 김태우, 엄지원, 안재욱, 에릭 ...
            
특히 바다는 절친 이은주를 잃은 충격에 새벽까지 빈소를 지키다가 응급실을 찾을 정도로 크게 상심했다. 
이은주.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스틸컷

  
                        
소속사 김종도 대표는 어둑해질 무렵 상복을 입고 나타났다. 슬픔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는 소속사 대표로서 취재진들 앞에서 그녀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애도했다. 순간 그는 오열에 북바쳐 실신할 지경에 이르러 사람들이 진정시켜야 했다.
                   
현장은 취재 경쟁으로 아수라장이었다. 연예기자 뿐만 아니라 사진기자, 경찰기자들도 모두 동원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사 송고에 문제가 많았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무선인터넷도 일반적이지 않았고 분당서울대병원은 산 속 깊이 위치해 제대로 터지지도 않았다. 

병원이 취재용으로 제공한 인터넷 전용선은 달랑 2개였다. 기자들은 순서대로 20분씩 기사를 전송했고, 급한 경우에는 CDMA 전화기로 기사를 불렀다.
                          
속보 경쟁이 아주 치열했다. 훨씬 나중에 포탈 관계자들에게 들을 얘기로는 '당시 트래픽이 어마머마했다. 아마 역대 최고였을 것이다. 나중 비슷한 사건이 있었지만, 첫번째 사건이어서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때 '미디어 자살보도준칙'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배우' 이은주에 대한 기억은 '쾌활하고, 소탈하다'였다. 연예인스럽지 않았다. 배우답지 않게 스스럼이 없었고 남을 배려해주는 마음이 느껴질 정도였다. 또 짖궂은 농담에 얼굴이 붉어지는 스타일 이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누구보다 열심히 홍보에 나서곤 했었다. 
이은주 공식 추모 팬카페 캡처

                
그녀가 죽음을 결심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 '주홍글씨' 속 노출 연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력하다.
              
경찰도 이에 대해 간접적으로 확인을 해주었다. 경찰은 입관식 직전에 취재진들에게 '그녀가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에서 평소 불면증을 호소하며 우울증에 관한 치료를 받아왔다. 일반 변사 사건으로 종결할 방침이다. 부검도 없다. 유족들이 원치 않는다. 더 이상 수사는 없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부분 앞서 언론들이 보도한 내용들이었다.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또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다’ ‘돈을 벌고 싶었다’ ‘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힘듦을 알겠냐’ 등의 내용도 담겨있다고 전해졌다.
                         
당시 인터넷에는 여러 추측이 난무했다. “영화 과다 노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주장은 물론 "유서 중에 마지막 통화자로 묘사된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유도했다", "최근 '연예인 X파일' 때문이다'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선정적인 추측은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면서 자제를 호소했다.
                  
유족들은 장례 형식을 화장으로 결정했다. 이은주는 친지들이 함께 한 가운데 화장용 오동나무관에 반듯하게 누웠다. 그녀의 어머니는 며칠동안 몇 번에 걸쳐 실신하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팬들도 슬픔을 함께 했다. 다음 팬카페에는 하루 24만명이 찾았고 12만8천여의 추모글을 남겼다. 네이버 팬카페에는 27만 명이 찾아와 4천 여개의 글을 올렸다.
                      
청아공원으로 향하던 날, 날씨는 화창했다. 그러나 겨울과 봄 사이에 영원히 자리한 그녀는 강렬한 아우라와 함께 매해 2월 22일되면 우리를 추억하게 만들고 있다.
                
이후 많은 이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최진실과 더불어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배우는 이은주다. '25살'이 남긴 영원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박홍규 기자 4067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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