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초등학교 객관식 시험 폐지] 정답 '찍는' 교실 종 쳤다
"정답은 문제지 뒤에 다 나와 있다."
그동안 문제 앞에 끙끙대던 아이들은 답을 먼저 들쳐 보는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는 답을 아예 외우기도 했다. 이제 부산의 초등학교에선 주어진 정답을 외우는 시대가 저문다. 새 학기부터 객관식 시험이 전면 폐지되고 서술형 평가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변화는 또 있다. 학부모에게 아이의 학습 결과를 통지하는 방식이 바뀌고, 수행평가 비중이 확대된다.
부산교육청 전국 최초 실시
초등 3학년부터 서술형 적용
1~2학년은 '생각 표현' 훈련
학부모 교육 방식도 변화 필요
질문 통해 말 많이 하게 해야
답 아닌 독창적 생각 유도를
'도달·미도달' 학업 성취도
상·중·하로 세분화해 평가
전 학년 일제형 지필고사 폐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봐
올해 부산 초등학교는 객관식 평가를 폐지한다. 전국 최초다. 4~5개의 보기를 제시해 정답을 선택하게 하는 평가 방법이 사라진다. 대신 문제의 정답을 직접 적거나 문장으로 서술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학생들이 자유로운 생각을 펼칠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부산시교육청은 사실상 3학년부터 서술형 평가를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1~2학년은 제대로 된 문장을 쓰기 쉽지 않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수업 시간에 구술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도록 만들 예정이다. 어느 정도 글쓰기에 익숙해진 3학년은 한 문장 정도 답안을 적도록 하는 게 목표다. 4학년에 진학하면 2문장, 6학년이 되면 한 문단 정도 답안을 작성하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평가 문항은 학생들이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바뀐다. 대표적으로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바뀐 해는 언제인가?'라고 물었다면 올해부터는 '우리가 살아가는 부산광역시의 가장 큰 자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로 대체된다. 수학 과목에서는 사각형 모양의 도형을 제시한 뒤 '이것은 정사각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과 같은 문제가 출제된다.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거나 정답을 이끌어 낸 과정을 서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에 대비해 학부모도 기존의 교육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아이를 책상에 앉혀 놓고 공부시키는 것보다 말을 많이 하도록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마다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책을 읽었다면 단순히 내용만 확인하는 데 그치는 건 좋지 않다. '네가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할 거야?' 등의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한 사물을 두고도 다양하게 해석하도록 습관을 들이는 것도 좋다.
부산시교육청 유초등교육과 안재홍 장학사는 "혹시 글자가 틀려도 생각을 읽는 방향으로 채점을 할 예정"이라며 "정답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독창적인 생각을 이끌어 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달·미도달' 대신 '상·중·하'로
올해부터 학생 학업 성취 결과도 좀 더 상세히 통보할 예정이다. 지금껏 학부모들이 열람할 수 있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는 과목별로 도달, 미도달 두 가지 방식으로만 학생의 성취 수준을 평가했다. 사실상 학생이 특정 과목에 어떤 수준까지 이르렀는지 명확하게 전달하진 못했다. 이에 학부모들은 학생의 부족한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사교육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앞으로는 학생의 학업 성취 평가를 '상, 중, 하'로 세분화한다. 게다가 교사가 학생의 부족한 부분과 학교에서 노력했던 점 등을 상세히 서술해 학부모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가정에서 필요한 교육을 권장하는 내용까지 담아 적어도 1년에 4번 이상 가정통신문을 보낼 계획을 갖고 있다.
시교육청은 학년 초가 되면 학부모에게 학생 평가 계획과 함께 학업 성취 결과를 쉽게 이해하게 만들 자료 등을 전달할 예정이다. 만약 학생이 특정 과목에서 '하' 평가를 받아도 예전처럼 미도달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 역시 예전의 도달 수준에 포함되며, 여기에는 학교에서 책임지고 학생의 수준을 올리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수행평가 최대 70%까지 확대
올해 시교육청은 현재 50% 수준인 수행평가 비중도 높일 예정이다. 지필평가의 비중을 줄이고 수행평가를 최대 7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쪽지 시험으로 수행평가를 대체하던 관행도 없어진다. 직접 체험을 한 뒤 보고서를 쓰도록 만드는 방안도 추진한다. 게다가 모든 학년에서 일제형 지필고사도 폐지된다. 중간, 기말고사가 사라지는 대신 수시로 평가를 진행한다. 한 단원을 마치거나 일정한 수업 시간을 채우면 시험을 치르는 방식으로 바뀐다.
이 모든 변화는 결국 창의적이고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수행평가 확대는 학생을 능동적인 학습의 주체로 만들고, 일제형 지필고사 폐지는 획일화된 사고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목표다. 학부모들은 상세한 통지문을 통해 학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가정에서도 그에 걸맞은 교육을 이어갈 수 있다. 서술형 평가 도입은 제한된 생각의 틀을 깨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 당장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주어진 정답에 익숙하고 수동적인 학생이 미래를 이끌어 가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마다의 장단점을 상세히 파악해 적합한 적성을 찾을 필요도 있다. 다음 달이면 본격적인 새 학기가 시작된다. 이제 새롭게 거듭날 초등 교육에 적응할 준비를 시작할 때다. 이우영 기자 edu@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