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비로 읽는 대중음악] 3. 윤수일의 '환상의 섬' 장생포 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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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고향 앞에서는 톱스타 아닌 '가인'

1997년 세워진 '환상의 섬' 노래비.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어릴 적 내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 하나쯤은 가슴속에 지니고 있을 것이다. 도시의 속도와 경쟁에 지칠 때 마음속 고향의 풍경을 떠올리며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지역 출신들이 갖는 자연의 혜택이라고 하겠다.

어린 시절 외로움 달래주던 죽도
정취 변한 슬픔 노래에 고스란히

후배 요청에 동네 축제도 달려가
시민들 고마움 담아 노래비 건립

울산 장생포 출신의 가수 윤수일은 어린 시절을 유달리 힘들게 보내야만 했다. 그의 모친은 1953년 6·25 한국전쟁으로 한국에 파견된 미국의 공군 장교와 국제결혼을 했다. 하지만 윤수일을 임신한 상태에서 부친이 본국으로 소환되어 비행훈련 도중 사망해버렸다. 유복자로 태어난 윤수일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 속에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음악과 친해지게 됐다.

1970년대 초 지인들과 함께 죽도 갯바위에서 사진을 찍은 윤수일.
그때 기타와 함께 윤수일을 위로해준 것은 장생포 바닷가에 방파제로 연결된 아름다운 섬 죽도였다. 동백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고 바위들이 징검다리처럼 흩어져 있는 바닷가의 갯바위에 걸터앉아 윤수일은 기타를 치기도 하고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윤수일은 이곳을 너무나 좋아해 귀가할 때 일부러 죽도를 들러서 가기도 했다.
'사랑만은 않겠어요' 등을 대히트시킨 윤수일의 1978년 모습.
윤수일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73년 서울로 올라가 신중현이 이끌던 골든그레입스라는 록밴드에 가입해 기타연주자이자 보컬로 활동하게 된다. 5년간 여기서 활동하다가 1977년 6월 솔로로 독립해 '사랑만은 않겠어요'라는 트로트 고고풍의 노래를 발표, 6개월 만에 10만 장 판매라는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이 시점은 윤수일에게는 하나의 행운이었다. 1976년 8월 조용필이 트로트 고고풍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러 대히트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다가 대마초 관련 전적이 드러나 1977년 4월 은퇴하면서 가요계에 커다란 공백이 발생한 때였기 때문이다. 작곡자 인치행이 역시 트로트 고고풍의 노래 '사랑만은 않겠어요'를 작곡해 조용필이 열어젖힌 트로트 고고라는 새로운 유행의 물결에 윤수일을 태워 보낸 것이었다.

이 곡의 히트로 윤수일은 1977년 말에 신인가수상과 10대가수상 등 각 방송국의 중요한 상들을 모두 받으며 가요계의 정상에 올라섰다. 여세를 몰아 '추억'(1978), '갈대'(1979) 등 연속되는 트로트 고고풍의 노래들을 히트시키며 인기를 이어나갔다. 록밴드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던 윤수일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81년부터는 자신의 6인조 록밴드 윤수일밴드를 결성해 록스타일의 '떠나지마' '제2의 고향'을, 1982년에는 불멸의 히트곡 '아파트'를 발표하면서 윤수일의 음악은 당시의 가장 첨단 사운드인 시티뮤직이라 불리면서 가요계를 선도해나갔다.
1985년 발매된 윤수일밴드 4집앨범 재킷.
1984년부터는 강렬한 록 음악에서 탈피해 뉴웨이브 풍의 댄스 리듬을 살린 '아름다워'를 히트시키며 윤수일의 음악은 세련미까지 갖추어갔다. 이때 윤수일은 고향을 떠난 지 11년 만에 자신의 마음속 풍경인 죽도를 찾아가 봤다. 하지만 아름답던 죽도의 풍경은 개발의 바람에 휩싸여 온데간데없었고 마치 쓰레기장처럼 방치된 모습을 봐야 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윤수일은 '환상의 섬'이란 곡을 작곡했다.

윤수일이 어릴 적부터 마음을 나누고 지냈던 고향 2년 후배 최정문이라는 사람이 있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그는 1995년부터 울산시의원을 역임하면서 추석을 앞두고 고래대축제라는 동네축제를 개최했다. 그때 선배인 윤수일이 와서 무료로 공연을 해줬고 그 이후로도 5~6년간 해마다 윤수일은 참석해줬다. 이 행사가 장생포에서 2000년 6회부터는 울산고래축제라는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는 문화축제의 원조가 됐다.
최근의 죽도(좌측 상단의 높은 건물이 자리잡은 조그만 동산) 주변 풍경. 김형찬 제공
최정문은 고향 선배 윤수일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동네 사람들과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아 1997년 10월 26일에 장생포 고래생태 체험관 광장에 '환상의 섬' 노래비를 건립했다. 전국에 200개가 넘는 노래비가 있지만 이처럼 선후배의 우정과 가수의 지역에 대한 애정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훈훈한 노래비는 '환상의 섬' 노래비가 최초일 것이다.

김형찬

대중음악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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