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환경평가제도란] 학교 200m 이내 21층 건물 들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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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지역이 부산시교육환경보호위원회 심의에서 고층 건물 신축을 승인받지 못한 부산 해운대구의 한 초등학교. 이미 학교가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다.

새싹들에게 햇볕은 소중하다. 학생들에게는 맑은 공기를 마시고, 소음에서 자유로울 권리도 있다. 안전한 길을 걷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들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학교와 그 주변 지역은 더욱 그러하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시행된 것이 교육환경평가제도다. 학교 주변에 고층 건물을 신축하려면 교육청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과 학습 환경을 지키기 위한 이 제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지난해 2월 교육환경법 시행
학교 주변 고층건물 신축 땐
교육환경보호위 통과 후 승인
소음·진동 등 판단 기준 삼아
일조권·통학로 안전보장 목적

사업시행자, 건축허가 60일 전
교육환경평가서 제출해야
홍보 부족 등 이유로 덜 알려져
건축인허가 과정 '손질' 필요

■고층 건물 신축, 학교 주변이라면…

지난해 2월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교육환경법)'이 시행됐다. 학교의 교육환경과 학생의 건강권, 학습권 등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교육행정기관, 학교, 지자체, 국가 등이 교육환경 보호에 유기적으로 협력을 해야 한다. 교육환경법에 따라 대표적으로 교육환경평가제도가 도입됐다. 교육환경보호구역(학교주변 200m 이내)에서 21층 이상 또는 연면적 10만㎡ 이상의 건축을 하려면 교육청의 심의를 거치게 하는 제도다. 학생들의 일조권과 안전한 통학로를 보장하고, 대기오염과 소음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건물 신축은 불가능하다.

교육평가제도에 따르면 사업 시행자는 교육감에게 교육환경평가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 교육환경보호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건물을 지을 수 있다. 부산시교육청은 교육청 공무원 4명, 대학과 연구기관 인사 4명, 비영리 민간단체 2명, 교장 1명, 지역 인사 4명 등 15명으로 교육환경보호위원회를 구성했다. 지역 인사 4명은 도로교통공단, 학부모, 퇴직 교장, 녹색어머니회 등에서 1명씩 선정했다.

부산시교육환경보호위원회의 한 위원은 "학생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은 교육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며 "학습환경 침해 중 특히 소음, 진동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고 귀띔했다.

부산시교육청은 41건의 교육환경평가를 진행했다. 부산시교육환경보호위원회 심의 결과, 승인 24건(59%), 불승인 6건(15%), 보류가 11건(26%)으로 나타났다. 중복된 건을 포함하면 총 4건의 건축사업이 불승인돼 사업계획의 변경이 불가피하다. 일조 분석 오류, 소음·진동 및 비산먼지 예측 오류, 안전 통학로 미확보 등이 주요 이유다.

■금지되거나, 사업 계획 바꾸거나

부산시교육환경보호위원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가 부산의 A초등학교 주변이다. 사업 시행자는 A초등학교 남쪽에 48층 오피스텔을 신축하려 했으나 위원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3~4년의 공사기간 중 소음, 진동, 비산먼지 등의 피해가 예상되고, 아이들의 일조와 조망 환경이 나빠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현재 A초등학교는 북쪽과 동쪽에 32~34층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상황이다.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해당 사업 시행자는 교육환경평가서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동시에 제기했다. 행정심판의 경우 사업시행자의 청구가 기각됐지만, 행정소송은 현재 부산지방법원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법 시행 이후 전국적으로 소송 사례가 전무해 어떤 판결이 나올지 주목된다.

부산의 B초등학교 주변은 심의를 앞두고 있다. 사업 시행자의 첫 계획은 B초등학교 정문 앞 공터에 77층 규모의 레지던스 건물을 신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업 부지가 교육환경보호구역 중 절대보호구역(학교 출입문에서 50m 이내 지역)에 해당되면서 레지던스 사업은 중단됐다. 이에 사업 시행자는 관광진흥법에 따른 '휴양콘도미니엄업(콘도)'로 사업 계획을 변경해 교육환경평가서를 제출한 상황이다. 콘도는 교육환경보호구역에 저촉되는 금지행위 및 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환경보호위원회의 심의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학교 주변 21층 이상의 고층 건물은 교육환경평가 심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와 학부모들은 고층건물 공사에 반대한다.

부산의 C초등학교 주변은 불승인 이후 사업 계획을 대폭 변경했다. 사업 시행자는 당초 C초등학교 주변에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려 했다. 부산시교육환경보호위원회는 소음, 진동, 비산먼지 피해가 예상돼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통학 안전을 확보할 대책도 미흡했던 데다 일조 시간도 대폭 감소한다는 점도 우려했다. 사업 시행자는 사업계획을 전면 재검토했다. 건축 높이를 대폭 낮춘 뒤 교육환경평가서를 다시 제출했다. 사업 기간 통학버스를 운영해 학생들의 통학 안전도 책임지기로 결정했다. 현재 사업 시행자는 부산시교육환경보호위원회의 재심의를 앞두고 있다.

■제도 홍보와 개선 필요

교육환경평가제도는 시행한 지 갓 1년을 넘었다. 여전히 제도가 덜 알려졌다는 평가가 많다. 아직까지 사업 시행자가 건축허가 신청 예정일 60일 전에 교육환경평가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부산시교육청 전영근 교육국장은 "교육환경평가를 간과하는 사업 시행자가 많은 편"이라며 "사업시행자들이 다른 법에서는 다 된다고 해서 기관별 협의를 완료했는데 교육환경법에서는 왜 안되냐고 항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건축인허가 과정에서 교육환경평가 심의를 먼저 받게 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부분의 사업시행자가 지자체 건축위원회나 경관위원회 심의를 거친 뒤 교육환경평가를 진행한다. 이 단계에서는 건축 규모(건물의 층수, 배치 등)를 조정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 학교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효과적으로 줄이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교육환경평가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학교와 주거지역 인근에 고층건물이 쉽게 들어설 수 없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청에 심의를 맡기는 것을 넘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산시와 지자체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건축 관련 행정 절차 과정에서 교육환경평가제도를 적극 홍보하면 사업 시행자의 혼란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장들 또한 책임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교육환경평가 심의 대상이 아니더라도 학교 교육환경을 침해하는 공사가 진행될 경우 시교육청에 신고하는 게 좋다. 올 3월 시교육청은 교육환경보호신고센터를 열었다. 센터는 신고를 받으면 유관기관들과 유기적으로 대응을 하기 위한 해결책을 찾는다. 글·사진=이우영 기자 edu@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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